범어사(梵魚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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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에 있는 금정총림으로, 영남 지방의 대표적인 사찰.

개설

범어사(梵魚寺)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금정산(金井山)에 있는 절이다.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화엄10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꼽혔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절이 거의 소실되었고 광해군 때 중건되었다. 근대기에는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선찰(禪刹)이 되었고, 현대에 들어서 해인사(海印寺), 통도사(通度寺)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로 발전하였다. 2012년 대한불교조계종 금정총림(金井叢林)으로 승격되었다.

연원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금정산(金井山)의 범어사는 당(唐)에서 귀국한 의상이 678년(신라 문무왕 18)에 창건하였고 의상의 제자 표훈(表訓)이 주석하며 신라 화엄10찰(華嚴十刹) 중 하나가 되었다고 전한다.

범어사 창건에는 몇 가지 설화가 전해온다. 먼저 금정산 정상에는 높이가 세 길 가량 되는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우물의 둘레가 10여 척, 깊이가 7촌 가량인데, 물이 항상 가득히 차 있어서 비록 가물지라도 마르지 아니하고 빛이 황금과 같았다. 바로 그 아래에 범어사(梵魚寺)가 있는데, 세상에는 "예전에 금빛 고기[金色魚]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으로부터 내려와서 그 가운데서 헤엄쳐 놀아서 범어사라는 사찰 이름을 얻었다."고 하였다[『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 동래현]. 이와 비슷한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동국(東國)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서 산 정상에 높이 50여 척의 거암(巨岩)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 샘이 있는데, 물빛은 금색(金色)이며 물속에서는 범천(梵天)의 고기가 놀았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 이름을 범어사(梵魚寺)라 했다는 것이다.

창건 당시 범어사의 가람 배치는 미륵전을 중심으로 대장전(大藏殿), 비로전(毘盧殿), 천주신전(天主神殿), 유성전(流星殿), 종루(鍾樓), 강전(講殿), 식당, 목욕원, 철당(鐵幢) 등이 별처럼 늘어서고 360 요사(寮舍)가 양쪽 계곡에 꽉 찼다고 한다. 또 사원에 딸린 토지가 360결(結)이고 소속된 노비가 100여 호에 이르는 대명찰(大名刹)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건물과 재산이 창건 당시 한꺼번에 갖추어졌다고 믿기는 어렵지만, 창건 초기부터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전해주는 내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고려시대에 범어사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변천

(1) 조선시대

범어사는 임진왜란 때 방화로 절이 모두 소실되었고, 거의 폐사된 절을 1602년(선조 35년)에 관(觀) 선사가 중건하였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다시 소실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묘전이 대웅전(大雄殿), 용화전(龍華殿), 관음전(觀音殿), 나한전(羅漢殿), 일주문(一柱門), 심검당(尋劍堂) 등을 건립하였다.

18세기 숙종 때 조정에서는 왜구의 침입에 취약한 동래부(東萊府)의 방어를 위해 금정산과 범어사에 산성을 쌓는 일이 논의되었고(『숙종실록』 1년 2월 6일), 1703년(숙종 29)부터 금정산성(金井山城)이 4년에 걸쳐 축성되었다.

1684년에 해민이 범어사의 비로전을 건립하였고, 1700년에는 명학이 팔상전, 종루, 불이문, 보제루, 천왕문 등을 건립하였다.

(2) 근대

근대 한국 선종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鏡虛) 선사가 1900년 범어사에 선원(禪院)을 개설하였다. 이 영향을 받아 금강암, 안양암, 계명암, 원효암, 안심료, 대성암 등에 선원과 선회가 창설되어 선풍이 크게 진작되었다. 선사 경허를 비롯하여 용성, 수월, 만해, 동산 등이 범어사에서 수행 정진하여 한국 불교의 근대기를 대표하는 선찰(禪刹)로 명성을 날렸다.

(3) 현대

현대기에 범어사는 해인사(海印寺), 통도사(通度寺)와 함께 영남 지방의 3대 사찰로 발전하였다. 현재 범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이고, 2012년 금정총림으로 승격되어 한국 사찰 8대 총림 중 하나가 되었다. 총림(叢林)이란 참선 수행 도량인 선원(禪院), 경전 교육 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교육 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고, 총림의 최고 지도자를 방장(方丈)이라고 한다.

문화재

대웅전(보물 제434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2년(선조 35)에 관 선사가 새로 지었고 이후 다시 소실된 것을 1613년(광해군 5)에 묘전이 건립하여 1713년(숙종 3) 홍보가 중수하였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삼층석탑(보물 제250호)은 신라시대 후기 흥덕왕 때의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우고 상륜부를 올렸다. 일제강점기 때 석탑을 수리하면서 기단 아래쪽에 높은 받침을 넣고 석조 난간을 둘렀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가람고(伽藍考)』
  • 김형우 외, 『한국의 사찰』, 대한불교진흥원, 2006.
  • 김광식, 「김지효의 꿈, 범어사 총림건설」, 『불교학보』49,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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