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해보(馬馬海堡)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시대에 평안도 강계군에 설치하여 권관이 관할하던 보(堡).

개설

마마해보는 평안도 강변(江邊) 7읍 중 하나인 강계군에 설치한 군사시설이다. 강변 7읍은 압록강 이북으로부터 이민족의 침입을 일차적으로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중에서도 강계군(江界郡)은 압록강의 상류 지점에 위치하여 적이 침입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지역으로 지목되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이미 18세기 초반 강계군에는 평안도에서 가장 많은 10개의 진보가 촘촘하게 설치되었고, 4,605명 이상의 군병이 배속되어 있었다. 마마해보는 강계부(江界府)에서 동쪽 방향으로 내지에 설치되어 외적 방어와 채삼(採蔘) 활동을 주로 담당하였다.

위치 및 용도

평안도 강계부에서 북동쪽으로 10리(약 4㎞) 정도 떨어진 마마해천(馬馬海川) 변에 위치하였다. 강계군에는 총 10개 진보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압록강 변으로는 고산리진(高山里鎭)·벌등진(伐登鎭)·만포진(滿浦鎭)이 지키고 있었고, 내지(內地)에는 욋괴진(夞怪鎭)·상토진(上土鎭)·종포진(從浦鎭)·추파진(楸坡鎭)·마마해보·평남진(平南鎭)·신광진(神光鎭)이 배치되었다. 이 중 마마해보는 강계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설치된 진보였다.

마마해보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외적의 방어와 감시였다. 평안도의 방어체제는 순(巡)·병영(兵營)―주진관(主鎭管)·독진(獨鎭)―진보(鎭堡)―파수(把守)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여기에 지휘체계가 미치기 어렵거나 주요한 군사적 요충지에는 추가적으로 방어영(防禦營)을 설치하였다. 또한 평안도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독진이 많이 편성되어 있었는데, 이는 적의 침입 경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압록강 변을 모두 독립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조치였다. 마마해보와 같은 진보는 평안도 내지의 요충지에서 실질적인 방어를 담당하는 군사시설이었다.

한편 강계부의 진보는 군사적 기능 외에도 채삼이라는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마마해보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인삼을 채집하는 기간이 되면 군사 업무를 잠시 뒤로하고 산에 올라가 인삼을 채취했다. 강계부에서 생산되는 인삼은 조선시대 국용 인삼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그 비중이 대단하였다.

변천 및 현황

1541년(종중 36) 실록에 처음 등장한다. 이때까지 마마해보는 야인(野人)들이 수시로 오가는 불안한 지역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마마해보는 군병 16인이 지키는 작은 규모의 군사시설이었다. 사실상 방어적 기능보다는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부분적인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병자호란 패배로 인한 청의 감시와 군사 재정상의 문제로 인해 17세기 후반까지도 정상적으로 복구되지 못한 상태였다.

마마해보는 현종대부터 시작하여 숙종 즉위 후 본격화된 평안도 지역의 군제 정비 과정에서 함께 복구되었다. 이 시기 복구된 평안도의 진보는 『속대전』을 기준으로 총 62곳이었다. 18세기 마마해보는 군병 약 98명이 소속된 권관이 지휘하는 보로 운영되었다. 마마해보는 1869년(고종 6) 혁파되었다(『고종실록』 6년 10월 20일).

형태

마마해보는 석성이 있었으나 정확한 규모는 확인되지 않는다. 종9품 권관이 관할하는 보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관련사건 및 일화

조선후기 강계부 마마해보는 군사 업무보다도 채삼 업무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마마해보 진영의 군졸들에게는 가장 큰 부담이 바로 인삼을 납부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서 1736년(영조 12)에는 마마해보 군졸들이 삼세(蔘稅)를 줄이고자 밤을 틈타 포(砲)를 발사하여 권관을 협박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 결과 일을 주도한 군졸 두 명은 효시되었고, 동조한 군졸들은 모두 섬으로 귀양 보내졌다(『영조실록』 12년 2월 4일).

참고문헌

  • 『속대전(續大典)』
  • 『여지도서(輿地圖書)』
  • 『만기요람(萬機要覽)』
  • 『해동지도(海東地圖)』
  • 『인재집(訒齋集)』
  • 강석화, 「조선후기 평안도지역 압록강변의 방어체제」, 『한국문화』34, 규장각한국학연구소, 2004.
  • 고승희, 「조선후기 평안도지역 도로 방어체제의 정비」, 『한국문화』34, 규장각한국학연구소, 2004.
  • 이철성, 「17세기 평안도 ‘강변 7읍’의 방어체제」, 『한국사학보』13, 고려사학회, 2002.
  • 임성수, 「18세기 평안도 진보재정의 운영과 변화」, 『한국사학보』46, 고려사학회, 201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