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新興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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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승병이 주둔했던 울산의 사찰.

개설

신흥사(新興寺)는 신라시대 명랑 조사가 창건하여 건흥사(建興寺)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건흥사 승려 지운(智雲)이 승병(僧兵)을 이끌고 왜군에 대항하였다. 정유재란 때 울산성 전투에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1646년(인조 24)에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이급(李圾)이 다시 중창하여 신흥사로 개명하였다.

내용 및 특징

(1) 창건

신흥사는 울산동대산에 소재해 있으며 635년(신라 선덕여왕 4)에 명랑 조사가 절을 세우고 건흥사라고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678년(신라 문무왕 16)에는 승병들이 성곽을 쌓고 무술을 연마하였는데 동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므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래되고 있는 이야기일 뿐 문헌적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2) 임진왜란의 승병과 사찰 중건

신라와 고려시대 신흥사의 역사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임진왜란 이후의 역사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울산이 함락되자 의병들은 기박산성(旗朴山城)에 진을 쳤다. 이때 건흥사 승려들도 무기를 들고 왜군에 대항하였으므로 울산 지역 승병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당시 승려 지운은 승병 100여 명과 군량미 300여 석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하지만 정유재란 당시 울산성 전투(1597. 12. 23.~1598. 01. 04)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왜군에 패해 퇴각하는 과정에서 건흥사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1646년(인조 24)에 경상우병사이급이 임진왜란 당시 건흥사 승병들의 활약과 기여를 높이 평가하여 절을 새로 중창하고 신흥사(新興寺)로 개명하였다. 하지만 이급은 1648년(인조 26)에 옥사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책임을 지고 체직(遞職)되었다(『인조실록』 26년 윤3월 25일).

(3) 조선후기 신흥사의 규모

『울산호적』에 기재된 신흥사의 호구(戶口)에 따르면 1714년 호적에 등재된 승려가 6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보이나, 1729년에는 56명, 1735년 40명, 1765년 20명, 1810년 8명, 1825년 9명, 1867년 36명, 1900년 8명으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1867년에는 36명으로 늘었는데, 이는 1871년 경상도좌병사(慶尙道左兵使) 윤선응(尹善應)의 건의에 따라 신흥사에 보루를 쌓았던 것과(『고종실록』 8년 2월 26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4) 화엄사 각황전과의 인연

금명보정(錦溟寶鼎)이 편집한 『백열록(栢悅錄)』에 수록된 「화엄사기」에 따르면, 1699년(숙종 25) 지리산 화엄사의 각황전(覺皇殿)을 중건할 때 울산 신흥사 승려가 화주(化主)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 화주승은 꿈속에서 권선문(勸善文)을 가지고 길을 나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받으라는 계시를 받고, 다음 날 길을 가다가 짐을 지고 가는 한 노파를 만나 간절하게 시주를 권하였으나 노파는 다음 생에 시주하겠다며 옆에 있던 연못에 빠져 죽었다. 이를 보고 충격을 받은 화주승은 북한산에 은거하였다. 그 당시 궁궐에서는 왕자가 태어났지만 두 손을 꼭 쥐고 펴지 않았고 입을 다물고 말도 하지 않았다. 왕자가 6살이 되던 해 화주승이 도성에 들어갔다가 왕자를 만났는데, 왕자가 두 손을 펴고 합장하면서 "화엄사 화주승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실에서 시주하여 화엄사 각황전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설화에서는 그 화주승이 북한산성 팔도도총섭 계파성능(桂坡聖能)이며, 왕자가 아닌 공주가 탄생한 일화가 전해진다. 이로 볼 때 성능의 중창 설화와는 또 다른 설화가 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울산호적(蔚山戶籍)』
  •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 성범중 역주, 『국역 학성지』, 울산남구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 2010.
  • 이종서, 「조선후기 울산 지역 불교사찰의 호구(戶口)와 사세(寺勢)의 변동」, 『역사와 경계』 9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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