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해(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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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한문으로 된 원전(原典)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 또는 번역한 결과물.

개설

언해(諺解)는 한자가 문자의 중심이던 조선시대에, 한글을 보급하고 새로운 정보를 널리 제공하기 위해 한문으로 된 불경, 유교 관련 서적, 의학 서적 등을 한글로 번역한 일을 말한다. 간경도감(刊經都監)교정청(校正廳) 등의 관청을 중심으로 백성들의 교화와 학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번역이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한글의 보급 및 한글문화 창출에 크게 기여하였다. 언해는 한문이나 백화문(白話文)으로 된 문헌만을 대상으로 하며, 한글과 원문을 병기한다는 점 등에서 개화기 이후에 이루어진 번역과 구별된다.

내용 및 특징

언해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곧 조선 세종 때부터 시작된 한자 번역 작업의 일환이었다.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언해서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쳐서 만든 책인 『월인석보(月印釋譜)』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훈민정음』의 언해본이다. 『월인석보』의 간행 시기는 1459년(세조 5)이지만(『세조실록』 5년 2월 9일), 원전에 해당하는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1447년(세종 29)에 간행되었다. 그런 까닭에 『훈민정음』의 언해본 역시 원전과 마찬가지로 1447년에 간행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해 혹은 언해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번역의 원전이 한자로 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학언해(小學諺解)』, 『금강경언해(金剛經諺解)』 등의 문헌들이 그 예에 해당한다. 한자 이외에 일본어나 몽골어 등으로 저술된 책을 한글로 번역한 경우, 언해에 포함시키지 않고 단순한 번역서로 취급하여 구별하였다. 몽골어 학습서인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와 일본어 학습서인 『왜어유해(倭語類解)』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언해서는 단순히 한글로만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한문 원전의 내용과 한글 번역 부분을 대조할 수 있도록 함께 싣는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의 시를 언해한 『두시언해(杜詩諺解)』 중간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번호는 설명의 편의를 위해 임의로 붙였다.

① 靡靡踰阡陌人煙眇蕭瑟

② 靡靡猶遲遲阡陌田間道ㅣ니라

③ 날호야 길흘 너머 가니 겟사미 다 避亂야 나가니 烟氣 져거 피오도다

먼저 ①에서 한자 원문을 제시하고, ②에서 한자에 대한 역주들을 보여 주고, 마지막으로 ③에서 한글 번역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일부 문헌의 경우 한자 원문에 한글 구결을 다는 등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언해서의 일반적인 형식은 대체로 『두시언해』의 예와 일치한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언문서 간행 기관으로는 주로 불경 언해를 담당한 간경도감과 경서(經書) 언해를 맡아본 교정청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관청에서 발간한 서적들을 중심으로 언해의 흐름을 살펴보면, 각종 불경과 『구급방언해(救急方諺解)』를 위시한 의료 관련 서적이 먼저 언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내훈(內訓)』·『삼강행실도언해』 등 유학 관련 서적과 경서들이 등장하였으며, 역학서(易學書)와 교화서(敎化書)를 중심으로 언해가 꾸준히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왕들도 언해에 관심을 가지고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언해서의 발간을 독려하였다(『중종실록』 20년 1월 23일).

언해는 특히 한글을 널리 보급하여 백성들의 언어생활을 향상시키고, 생활 편의를 위한 각종 실용 정보와 유교적 실천 윤리 등을 전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개화기 이후 한글이 문자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언해는 의미를 상실하고 소멸되었지만, 여전히 해당 시기의 국어와 문화 및 시대별 변화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 『두시언해(杜詩諺解)』(重刊本)
  • 박종국, 『훈민정음』, 정음사, 1976.
  • 양태진, 『알기 쉬운 옛 책 풀이』, 법경출판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