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분(嘗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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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병세를 살피기 위해 그 대변을 맛보는 일.

개설

상분(嘗糞)은 단지(斷指)와 더불어 지극한 효행을 이르는 말이다. 주로 부모의 병세가 위독할 때 지극한 효성으로 대변을 맛보아 그 병세를 살폈는데, 드물게는 남편이나 형을 위해 상분을 행하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상분은 문자 그대로 ‘대변을 맛본다’는 뜻이다. 이 말은 『남사(南史)』「검루전(黔婁傳)」의 ‘상분미첨(嘗糞味甛)’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남조(南朝)시대 제(齊)나라에 효자로 이름난 유검루(庾黔婁)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병을 앓았는데, 의원이 "대변을 맛보아 맛이 달면 병세가 심한 것이고, 쓰면 차도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유검루는 주저하지 않고 대변을 맛보았는데, 맛이 달아서 며칠을 넘기지 못할 상태였다. 그래서 북극성에 빌었더니, 아버지의 수명이 다했으나 유검루의 효성을 보아 얼마간 수명을 연장해 주었다고 한다. 이후 이 이야기는 하늘도 감동시킨 지극한 효성을 보여 주는 예로 사용되었다. 한편 상분은 지극한 아첨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대부분 병든 부모를 위해 행한 효행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효자에게 정문(旌門)을 세워 주거나,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왕은 예조에서 올린 보고서에 의거해 포상하였는데, 보고서에는 효행의 구체적인 내용이 언급되었다. 이때 상분은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이는 단지, 허벅지를 베어 내는 할고(割股) 등과 함께 효행의 정도를 나타내는 덕목으로 제시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부모에 대한 효성으로 상분을 행한 인물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한양 경행방(慶幸坊)에 사는 학생 이백자(李伯孜)이다. 1434년(세종 16)에 예조에서 올린 보고에 따르면, 이백자는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나면 약을 달여 간호하였고, 대변을 맛보아 달면 마음속으로 근심하여 하늘에 읍소하며 자신이 대신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에 세종은 이백자를 서용(敍用)하도록 하였다(『세종실록』 16년 2월 3일).

조선시대에는 태조 때부터 효행을 포상하였으나, 상분을 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상분을 행한 인물이 보고되기 시작하는 것은 앞서 살핀 것처럼 세종대인 1434년부터이다. 이는 세종의 명으로 집현전 부제학설순(偰循)이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편찬해서 올린 지 2년 만의 일이다. 이후 백성들에게 삼강을 교육하고, 이를 실천하기를 강조한 사회 분위기의 영향으로 중종과 명종대에는 그 빈도수가 증가하였다.

변천

상분은 원래 부모의 병세가 위독할 때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형을 위해 아우가, 남편을 위해 부인이 상분을 행하기도 하였다(『중종실록』 37년 11월 10일) (『명종실록』 10년 7월 27일). 이는 상분이 효행을 넘어, 열(烈)이나 우애를 실천하는 행위로 확장되었음을 보여 준다.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