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락사(妙樂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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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고려대장경을 요청했던 일본 복강시(福岡市)의 임제종 사찰.

개설

일본 복강시(福岡市) 박다구(博多区)에 있는 묘락사(妙樂寺)는 임제종(臨濟宗) 대덕사파(大德寺派) 사찰로 1316년에 월당종규(月堂宗規)가 창건하였다. 1586년에 전쟁으로 건물이 소실된 후 1600년에 지금의 지역으로 옮겨 세웠다.

내용 및 특징

처음에는 묘락사가 박다 항구 근처에 세워져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使臣) 일행이 숙박하는 등 대외 교섭의 거점이 되었다. 당시 건물 역시 중국풍의 중층 양식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1586년에 전쟁으로 건물이 소실된 후 1600년에 지금의 지역으로 옮겨 세웠다.

묘락사 개산조인 월당종규와 역대 주지의 제사를 지내는 곳을 수월암(水月庵)이라고 부르는데, 1698년에 재건되었고 1853년에 중수되었다가 1981년에 다시 수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산당(開山堂)은 강호(江戶)시대의 건물이지만, 그 액자는 1329년에 경도(京都)의 남선사(南禪寺)에 머물던 명극초준(明極楚俊) 선사가 원나라에서 일본으로 도래(渡來)했을 때 월당종규를 위해 써 준 것이다.

1491년(성종 22)에 일본 사신이 와서 묘락사의 대장전(大藏殿) 건립을 위한 비용과 대장경(大藏經)을 요청하였다. 일본의 원의재(源義材)는 서신(書信)에서 자신이 왕위를 계승하여 중 경팽(慶彭) 수좌(首座)를 보내 새로 국사(國事)를 맡았음을 알리고, 묘락사의 법보가 빠뜨려진 지 오래 되어 대장경 전부(全部)를 하사하여 보충하고, 목면을 내려 대장전 건립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다(『성종실록』 22년 8월 4일). 이에 조정에서는 대장경 1부와 면포(綿布) 1,000필을 도와주었다(『성종실록』 22년 9월 30일).

참고문헌

  • 한문종, 「조선전기 일본의 대장경구청과 한일간의 문화교류」, 『한일관계사연구』17, 2002.
  • 相賀徹夫 著, 『探訪日本の古寺』15: 九州·四國, 東京: 小學館,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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