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유왕(迦維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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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 무렵 인도 카필라성의 성주이자 석가모니의 아버지.

개설

가유왕(迦維王)은 기원전 6세기경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성의 국왕이다. 일반적으로는 석가모니의 아버지인 슈도다나(Śuddhodāna)를 의미한다. 그는 마야(摩耶) 부인을 왕후로 맞이하여 싯다르타(Siddhārtha)를 낳았고, 싯다르타는 출가하여 석가모니가 되었다.

내용 및 특징

가유(迦維)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인도 북부 지역에 있던 작은 성의 이름이다. 원어인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를 가비라바소도(迦毘羅婆蘇覩) 또는 가비라위(迦毘羅衛)라고 음역하는데, 가유는 이를 줄인 말이다. 가비라(迦毘羅)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가유왕은 카필라바스투의 성주를 의미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가유왕이라고 하면 석가모니의 아버지인 슈도다나를 뜻한다. 슈도다나는 수두단(輸頭檀), 수도타나(首圖駝那), 설두(屑頭) 등으로 음역하며, 정반(淨飯), 백정(白淨) 등으로 한역한다.

정반왕은 마야 부인을 왕후로 맞이하여 싯다르타를 낳았지만, 마야 부인이 곧 사망한 까닭에 그의 동생인 마하파자파티(Māhapajāpatī)를 다시 왕비로 맞이하여 싯다르타를 기르도록 하였다. 이후 싯다르타는 정반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가하였고, 고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석가불(釋迦佛)이 되었다.

신라 왕실에서는 불교를 통해 왕권의 신성함을 구현하기 위해 석가족의 왕명을 그대로 따온 이름을 지었는데, 신라 진평왕은 싯다르타 같은 훌륭한 왕자를 잉태하고자 하는 염원으로 자신의 이름을 백정이라 하였다. 이런 관념을 진종설(眞宗說)이라 한다.

가유왕의 개념이 기록된 우리나라의 문헌으로는 『삼국유사』「어산불영(魚山佛影)」과 『조선왕조실록』을 꼽을 수 있다. 「어산불영」에는 석가문(釋迦文)이 가비라국 정반왕의 왕자라고 되어 있으며, 『선조실록』에는 석가(釋迦)는 이름이 구담(瞿曇)이고 가유왕의 적자(嫡子)라고 기록되어 있다(『선조실록』 6년 1월 12일).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부처님의 생애 편찬위원회, 『부처님의 생애』, 조계종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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