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素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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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 또는 하얗게 차려입은 옷.

내용

흉례에는 소복(素服)을 입었다. 또한 일식이 일어나는 날에는 일식을 구제하는 의식으로 왕이 소복 차림으로 해가 지기를 기다리다가, 해가 지고 난 뒤에야 소복을 벗었다. 국상을 당하면 외방의 관원은 부음(訃音)을 들은 날 소복 차림으로 곡(哭)하고 사배(四拜)하며, 각도의 대소 사신(使臣) 및 각 관원은 부고(訃告)를 받는 날에 정청(正廳)에 향탁(香卓)을 설치하고, 소복하고 오사모를 쓰고 흑각대를 띠고 입정(入庭)한다. 이후 사신은 동쪽에, 외관(外官)은 서쪽에 두 줄로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고, 집사자(執事者)가 향(香)을 올리면 사신 및 외관이 부복(俯伏)하여 슬프게 곡하되, 사배례(四拜禮)를 행하였다.

부음을 들은 제6일째에 성복(成服)을 하는데, 그날 이른 아침에 정청에 향탁을 설치하고, 소복을 벗고 재최(齊衰)를 입고서 입정하여 꿇어앉으면, 집사자가 향을 올리고 사신과 외관은 부복하여 슬프게 곡하고 사배례를 행하였다.

1752년(영조 28) 3월에는 대전(大殿)과 중궁전, 왕대비전의 복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성복(成服) 전에는 소복을 입고 성복 이후에는 오복(五服)을 입게 되는데, 성복 중이라도 연거(燕居) 때에는 흑두면(黑頭冕)에 소복과 소대(素帶)를 착용하였다(『영조실록』 28년 3월 7일). 왕이 상복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으면 모든 관사(官司)에서 소복을 벗었다. 국상이 아닌 중국 황제가 승하하면 중국에서 사신을 보내어 황제의 유조를 반포하게 하였는데, 이때 왕은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소복 차림으로 유조를 받들었다.

용례

甲辰朔 日食不見 初日官啓曰 當日沒時有食 上素服以俟 日沒乃釋(『태조실록』 2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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