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총재(保育總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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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의 일본 유학 기간 중 황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도록 일본 천황이 내린 직책.

개설

황태자 영친왕이 1907년 11월에 일본 유학을 시작하게 되자, 일본의 명치천황(明治天皇)이 영친왕의 유학을 추진하였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보육총재(保育總裁)로 임명하여 영친왕의 일본 유학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1909년 11월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하자, 일본 궁내대신 이와쿠라 도모사다[岩倉具定]가 제2대 보육총재로 임명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907년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자, 후사가 없던 순종의 계승자로 세제인 영친왕이 황태자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영친왕을 일본으로 유학시키기를 권유하여 1907년 11월에 영친왕은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영친왕의 일본 유학을 주장했던 이토 히로부미는 스스로 영친왕의 교육을 자임하여, 한국에서는 그를 태자태사(太子太師)로 임명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영친왕을 배종하여 일본 유학길에 수행하였고, 일본 황제는 일본 유학 기간 동안 영친왕을 잘 보살피라는 뜻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보육총재에 임명하였다.

조직 및 역할

영친왕은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 황족들의 교육기관인 가쿠슈인[學習院]에서 수학하였으나, 보육총재는 학교 학습 이외에도 영친왕이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영친왕의 교육 및 생활 전반을 보살피는 책무를 맡았다. 이토 히로부미는 통감직도 맡고 있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영친왕의 유학을 관장하였다. 1908년 8월에는 19일 동안 간사이 지방을 동행하여 순유(巡遊)하고 1909년 8월에는 홋카이도와 동북 지방 여행에 동행하기도 했다.

변천

초대 보육총재인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10월 26일에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의 저격으로 사망하자, 일본궁내대신이와쿠라 도모사다가 제2대 보육총재로 임명되었다. 이와쿠라는 1910년 3월 31일에 사망할 때까지 보육총재의 직에 있었으나, 이미 이와쿠라가 병이 들어 실질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워, 1910년 2월 26일에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인 이토 히로쿠니[伊藤博邦]를 황태자 어용저(御用邸) 회계(會計) 및 기타(其他) 제 업무 감독(監督) 촉탁(囑託)으로 임명하여 영친왕을 돌보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황성신문(皇城新聞)』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 『신한민보(新韓民報)』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