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국(軍需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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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갑오개혁 1차 시기 군정을 담당하던 군무아문 산하에서 전국 육·해군의 군량·복장 등을 담당하던 관서.

개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군국기무처는 관제를 의정부 8아문(八衙門) 체제로 개편하면서 군무아문(軍務衙門)을 신설하고 이전의 군제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다. 이전의 여러 군영들을 통합하여 정리하였고, 군무아문에는 총무국·친위국(親衛局) 등 7개 국을 설치하였다. 당시 군무아문 산하의 군수국은 전국 육군과 해군의 군량(軍糧)과 복장(服裝) 등의 사무를 맡았다. 1895년 4월 군무아문이 군부로 개편되자 군수국은 새로 제정된 군무국의 업무로 흡수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882년 신식 군제를 도입하여 군제를 개혁하려고 하였으나 이전의 군제를 개혁하지는 못하였다. 1894년 6월 갑오개혁으로 군국기무처에서 이전 군제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에 나섰다. 1894년 6월 28일에는 의정부를 중심으로 중앙 행정 기구를 전격 개편하였다. 이때 내무(內務) 이하 8개 아문의 하나로 군무아문을 설치하였다.

군무아문은 전국 육·해군의 군정(軍政)을 통괄하고 군인과 군속을 감독하며 관내 여러 부서를 통솔하는 기관이었다. 관서로는 총무국, 친위국, 진방국(鎭防局), 해군국(海軍局), 의무국(醫務局), 군수국, 회계국이 편성되었다. 이 가운데 군수국은 전국 육·해군의 군량·복장 등의 사무를 관장하였다.

조직 및 역할

군수국에는 전국 육·해군의 군량·복장 등의 사무를 관장하는 관리로 참의 1명과 주사 4명을 두었다. 1895년 1월 30일에는 제주도에서 해마다 바치던 말을 군무아문에 속하게 하여 군수용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바치는 말은 배로 실어 오게 해서, 말을 옮기면서 발생하던 폐단을 없애도록 하였다. 군수국은 청일전쟁과 동학농민군 탄압 시 일본군과 협조하여 군비와 군량 등을 조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1895년 4월 1일 칙령 55호로 군부 관제가 제정되어 군무아문이 폐지되고 각 국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때 군수국은 군무국의 군사과 업무에 흡수·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송병기·박용옥·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1~4, 국회도서관, 1970~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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