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정(僉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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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녕부·장악원(掌樂院) 등 정3품 당하 아문 가운데 시(寺)·원(院)·감(監) 등에 소속된 종4품 관직.

개설

첨정(僉正)은 동반(東班)의 돈녕부·봉상시(奉常寺)·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 등과 서반(西班)의 훈련원 등의 관서에 설치되었다. 첨정은 1466년(세조 12) 관제 개정 당시에 처음 등장한 관직으로, 각 관서마다 설치 경위는 달랐다. 봉상시의 경우 종래의 소윤(少尹)을, 선공감의 경우 부정(副正)을, 훈련원의 경우 부사(副使)를, 사역원의 경우 부지사(副知事)를 각각 첨정으로 개칭하였다. 사섬시와 상의원, 내의원의 경우에는 새롭게 신설되었다. 돈녕부에는 1470년(성종 1)에 추가로 설치되었다. 이후 『경국대전』에는 모두 22개 관서에 27명의 첨정이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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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직무

첨정은 각 관서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예를 들어 각종 직물의 조달 등을 관장하던 제용감 첨정은 베의 수납을 주관하였고(『성종실록』 1년 5월 30일), 사역원 첨정은 대마도에 선위관(宣慰官)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성종실록』 1년 9월 1일). 사복시 첨정은 사복시 소속의 구졸(廐卒)과 지방 역졸의 감독과 관리를 담당하였다(『현종실록』 9년 8월 18일). 또한 봉상시 첨정은 적전(籍田)을 관리하였는데, 판관이 동적전을 관리하였고, 첨정이 서적전을 관장하였다(『중종실록』 24년 1월 14일). 봉상시 정(正)이 일을 할 수 없으면[有故時] 제사를 위해 바쳐진[薦新] 물자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장악원 첨정은 음악을 아는 다른 관서의 관원이 겸직하던 자리이며, 종부시 첨정은 왕실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의 관리를 담당하고 동시에 겸춘추(兼春秋)의 역할을 겸하기도 하였다(『중종실록』 32년 1월 26일). 사옹원 첨정은 도제조가 수라상의 음식을 검사[監膳]할 때 입직하였다.

이 밖에도 왕과 각 관서의 낭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윤대(輪對)에 참여하였고, 특명으로 지방에 파견되어 국문(鞫問)을 담당하였다(『성종실록』 7년 11월 2일). 어사(御史)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변천

조선후기에 이르러 정원에 변동이 생긴 관서가 있다. 영조대 편찬된 『속대전』에서 돈녕부와 종부시·내자시·내섬시·예빈시·군자감·제용감·선공감 등 소속의 첨정은 혁파되었고, 봉상시와 군기시는 정원 2명에서 1명이 축소되었다. 반면 훈련원의 경우는 2명이 증가되었고, 이후 『대전회통』 단계에서 다시 8명이 증원되어 모두 12명의 정원으로 조정되었다.

한편 조선후기에 첨정은 음직(蔭職)의 하나로 제수되기도 하였고(『숙종실록』 35년 9월 12일), 1686년(숙종 12) 사재감 첨정은 무신으로 뽑도록 개정되었다(『숙종실록』 12년 6월 3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육전조례(六典條例)』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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