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馬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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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청나라와의 전쟁을 치르거나 대비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하던 기병 부대.

개설

임진왜란으로 인해 명나라의 국력이 쇠퇴하였고, 명나라 내 정세의 혼란 등으로 말미암아 명나라의 만주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여진족은 이 틈을 타서 급격히 성장하여 조선에 위협이 되었는데, 여진족은 일본군과 달리 기병 전술을 구사하였으므로 이들을 방어하기 위해 마병이 필요하였다. 때문에 인조대 훈련도감에 마병 200명이 설치되었고, 1627년(인조 5) 작성된 「영장절목」에 의하면 지방군에도 마병이 설치되었다. 아울러 마대는 황해도의 별마대처럼 숙위(宿衛)도 담당하였고, 어가의 호위나 명령의 전달[傳語] 등의 임무도 수행하였다. 한편 마대는 1894년 갑오개혁과 1895년 을미개혁으로 조선후기 군대가 혁파될 때 폐지되었다가, 1895년 신설대에 다시 포함된 후 1899년(고종 36) 시위기병대대가 되었다. 하지만 1907년 군대 해산 때 근위기병대가 되면서 정원도 축소되었으며, 1909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담당 직무

마대는 청나라와의 전쟁을 치르거나 대비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실제로 1636년 12월 훈련도감의 마대 50명은 ‘포수 300명, 사수 100명, 계원(繼援) 100명’과 함께 청나라 군인 100명 이상을 죽이는 성과를 올렸다. 1684년(숙종 10) 함경남·북도에 각각 300명씩 친기위를 설치한 것도 북변(北邊) 방위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아울러 마대는 왕이 행차할 때 어가의 호위, 궁궐의 수호, 명령의 전달 등의 임무도 담당하였다. 금군마대는 1655년(효종 6) 왕이 강릉(康陵)에 참배할 때(『효종실록』6년 3월 27일), 어영별마대 57명은 1666년(현종 7) 왕이 온양온천으로 거둥할 때 어가를 호위하였다. 이어 어영청 별마대 54~56명은 한 달씩 동영(東營)에 입직하여, 그리고 황해도의 별마대와 별효위는 각각 어영청과 금위영에 소속되어 궁궐의 숙위를 담당하였다. 그 밖에 1745년(영조 21) 각 고을의 마대가 명령을 전달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는데, 경기도의 짐을 싣는 말인 복마(卜馬)는 부실하므로 경성처럼 보발(步撥)로 하도록 하였다(『영조실록』21년 2월 20일). 이러한 직무를 수행한 마대에게는 활쏘기 시험을 보아 성적이 우수하면 과거 시험의 최종 시험인 전시(殿試)에 곧바로 응시할 수 있는 자격[直赴殿試] 등의 혜택을 제공하였다.

변천

훈련도감 마대는 1627년 그 존재가 확인된다. 좌·우령(領) 200명으로 편성되었던 마병은 1634년(인조 12) 500명으로 증가하여 5초(哨)가 되고, 효종대에 1초가 추가되어 마대는 모두 6초가 되었다. 당시 1초는 약 100명을 단위로 하던 군제 편제였다.

아울러 황해도의 별마대 840명과 별효위 840명은 각각 어영청과 금위영에 소속되어 상번(上番)하였는데, 1745년(영조 21) 명칭이 숙위기사(宿衛騎士)로 바뀌었다. 이어 1750년 황해도가 한양과 멀어 상번하기 힘든 점 등을 고려하여 이들을 황해도감사(黃海道監司)와 병마절도사에게 소속시키고, 대신 경외(京外) 출신(出身) 중 300명을 선발하여 경기사(京騎士)라고 부르며 두 영에 각각 150명을 배치한 뒤 3개의 번(番)으로 나누어 1개 번씩 상번하도록 하였다.

한편 마대는 1894년 갑오개혁과 1895년의 을미개혁으로 조선후기 군대가 혁파되면서 함께 폐지되었으나, 1895년 설치된 신설대(新設隊)에 공병(工兵)·치중병(輜重兵)과 함께 포함된 후 1899년 시위기병대대가 되었다. 하지만 1907년 군대 해산 때 황실의장을 관장하는 근위기병대가 되고 정원도 92명으로 줄었으며, 1909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각사등록(各司謄錄)』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일성록(日省錄)』
  • 『홍재전서(弘齋全書)』
  • 『임하필기(林下筆記)』
  • 『진연의궤(進宴儀軌)』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김종수, 『조선 후기 중앙 군제 연구: 훈련도감의 설립과 사회변동』, 혜안, 2003.
  • 서인한, 『대한제국의 군사 제도』, 혜안, 2000.
  • 노영구, 「선조대 기효신서의 보급과 진법 논의」, 『군사』34,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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