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교수(天文學敎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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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상감 직제에서 천문학 분야를 강학하고 총민(聰敏)의 고시를 관장하는 종6품의 관직.

개설

1466년(세조 12)에 직제를 개편하면서 관상감의 삼학(三學) 중 천문학에 교수 1인과 훈도 1인을 두었고, 풍수학은 지리학으로 개칭하고서 교수 1인과 훈도 1인을 두었으며, 음양학은 명과학으로 개칭하고 훈도 2인을 두었다. 따라서 천문학교수(天文學敎授)는 종6품으로 관상감 내 천문학 분야의 교육과 시험을 관장하는 직제로 설치되었고, 천문학훈도는 정9품으로 1인을 더 두어 보좌케 하였다. 또 천문학겸교수는 종6품으로 3인을 더 두어 관상감의 업무 분장을 원활하게 하였다.

담당 직무

관상감에서 천문학 분야의 교육과 시험을 관장하였다.

변천

천문 현상을 관측하고 해석하는 전문가를 삼국시대에서는 일자(日者) 혹은 일관(日官)이라 불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718년(신라 성덕왕 17) 누각전(漏刻典)을 두어 천문과 누각의 업무를 관장케 하였으며, 749년(신라 경덕왕 8)에는 누각박사(漏刻博士) 6인과 천문박사(天文博士) 1인을 설치하였고, 천문박사는 후에 사천박사(司天博士)로 개칭하였다.

『서운관지』「관직편」에 따르면, 관상감에 설치된 천문학교수는 종6품으로 1인을 두었는데 총민의 시험을 관장하는 관직으로 삼력관(三曆官) 중에서 판관(判官) 이상의 녹관직(祿官職) 관원 중에서 임명하였다. 후보 추천은 천문학의 당상관, 동반(東班) 정직을 지낸 관원, 겸교수 및 구임(久任)이 모여서 권점하였으며, 지리학과 명과학 등과자가 천문학 분과에서 근무하는 양학과자(兩學科者)는 후보로 추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영조 연간에는 수술관도 후보로 올리기 시작하였다.

이 직제는 1466년에 대대적으로 관제를 정비하면서 종6품의 천문학교수 1인과 정9품의 천문학훈도 1인을 설치하면서 공식화되었다(『세조실록』 12년 1월 15일). 『서운관지』에서는 전에는 두 자리가 있었는데, 그중 한 자리는 문신이 겸임하는 자리로 상관이 아래 관원을 직접 임명하는 자벽(自辟)으로 하였다가 후에 폐지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는 성변(星變)이 있을 때 문신 중에 청망(淸望)이 있는 자를 임시로 측후관(測候官)으로 임명하여 보충하였다고 한다.

영조대에 편찬한 『속대전』에서는 천문학겸교수로 종6품 3인을 새로 두었고, 겸교수는 근무 일수 45개월이 차면 승진 또는 전보하였다. 정조대에 편찬한 『대전통편』에서는 그 3인 가운데 한 자리는 천문학에 배속하고, 한 자리는 천문·지리·명과의 3학을 돌아가면서 임용하고, 한 자리는 금루관과 화원(畫員)을 교대로 임용하며, 근무 일수가 차면 승진 또는 전보한다고 개정하였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 『서운관지(書雲觀志)』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일권,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국역고려사 권14 지2 曆志 역주』, 동아대 석당학술원, 경인문화사, 2011.
  • 陳遵嬀, 『中國天文學史』 上·中·下, 上海人民出版社,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