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례관(問禮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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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의례 관계로 중국 사신을 상대하고 접대했던 임시 관직.

내용

중국에서 사신의 파견을 알리는 패문(牌文)이 이조에 도착하면, 즉시 2품 이상으로 임명되는 원접사와 당하 문관인 문례관(問禮官)을 선발하여 국경인 의주로 파견하면서 사신 접대 준비가 시작되었다. 문례관은 의례 관련 서적에 통하고 외교문서 작성에도 능해야 했으며, 때로는 사신과 함께 시문도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했다. 문례관은 업무가 많고 외방에 머무는 기간이 길기 때문에 가능한 한 한가한 직책을 맡고 있는 문관으로 임명하였는데, 당하관이라도 너무 낮은 관직자는 피하여 4품 정도의 관원에게 맡겼다.

문례관은 사신과 대면하여 차후의 의례 절차를 논의하고 조정하여 그 결과를 왕에게 보고하였다. 때로는 양국 간의 의례 차이로 중국 사신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가능한 한 사신에게 절차를 묻고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문례관은 당하관으로 실무를 담당자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품계가 높으면서 통역을 담당하던 역관과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용례

問禮官卞孝文來復命啓曰 臣見使臣 以事目逐一問之 使臣皆以爲可 至問上禮節次 使臣答曰 此中朝親王所行之禮 本國前此不爲則不可行也(『세종실록』 17년 3월 15일)

참고문헌

  • 『통문관지(通文館志)』
  •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 李鉉淙,「明使接待考」, 『鄕土서울』 12,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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