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번(掛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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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장엄구의 하나인 번을 매다는 것.

개설

번(幡)은 불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깃발 모양의 장엄구로, 이것을 당간(幢竿)이나 탑의 상륜부에 매다는 것을 괘번(掛幡)이라고 한다. 사찰에서 괘번을 다는 것은 대중에게 불교 행사를 널리 알리고 불심을 고취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연원

번이란 부처와 보살의 위덕과 공덕을 드러내기 위해 장식하는 깃발로, 산스크리트어 ‘파타카(pataka)’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증번(繒幡) 또는 당번(幢幡)이라고도 한다. 괘번은 번을 매다는 것으로 불전을 장엄하기 위해 불전 내의 기둥에 달아 두거나, 법회가 진행될 때 당간이나 탑 상륜부 등에 단다. 화려한 색채의 깃발을 나부끼게 하여 장엄함을 연출함으로써 사람들을 감화시켜 불교에 귀의하게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원래 인도에서 번을 다는 것은 성자(聖者)를 표시하거나 전쟁에서 적을 무찔렀을 때 무공을 알리기 위함이었지만, 이것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악귀를 항복시키고 복을 받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내용 및 특징

번은 기능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관정번(灌頂幡)은 계를 받고 불문에 들어갈 때 정수리에 물을 뿌리는 의식인 관정 의식 때, 정번(庭幡)은 비를 청하는 기우제 의식 때 사용한다. 인로왕번(引路王幡)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러 오는 인로왕보살을 의식 장소에 모시는 상징으로, 천도재 때 사용한다. 오방불번(五方佛幡)은 법회 때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번으로, 동서남북과 중앙의 방위에 건다. 중앙에는 비로자나불번(毘盧遮那佛幡), 동쪽에는 약사불번(藥師佛幡), 서쪽에는 아미타불번(阿彌陀佛幡), 남쪽에는 보성불번(寶性佛幡), 북쪽에는 부동존불번(不動尊佛幡)을 건다. 각 방위에 따라 여러 부처가 있는 것은 세계는 무수하고 시방[十方]에 편재해 있으므로 각각의 인연에 따라 나타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번은 각 방위에 따라 바탕과 글씨의 색깔을 다르게 제작한다. 중앙의 비로자나불번은 오방 중에서 중앙을 상징하는 황색 바탕의 번신에는 ‘나무중방화엄세계비로자나불(南無中方華藏世界毘盧遮那佛)’이라는 적색 글씨를, 동방의 약사불번은 동방을 상징하는 청색 바탕의 번신에 ‘나무동방만월세계약사여래불(南無東方滿月世界藥師如來佛)’이라는 황색 글씨를, 서방의 아미타불번은 서방을 상징하는 백색 바탕의 번신에 ‘나무서방극락세계아미타불(南無西方極樂世界阿彌陀佛)’이라는 흑색 글씨를, 남방의 보성불번은 남방을 상징하는 적색 바탕의 번신에 ‘나무남방환희세계보승여래불(南無南方歡喜世界菩勝如來佛)’이라는 백색 또는 청색 글씨를, 북방의 부동존불은 북방을 상징하는 흑색 바탕에 ‘나무북방무우세계부동존불(南無北方無憂世界不動尊佛)’이라는 백색 또는 황색 글씨를 수놓는다. 각 방위에 따라 여래의 존재를 부각시켜 의식의 장엄을 표현하는 동시에 여래의 가르침이 모든 세계에 전해지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형태

현재 전해오는 번은 조선후기의 직물제가 대부분이고, 중국에서 제작된 일반적인 번의 형태보다 간략화 되면서 한국적인 조형미가 가미된 것이 특징이다.

번의 형태는 대개 상하로 길게 늘어뜨린 장방형으로 크게 번두(幡頭)와 번신(幡身)으로 구분된다. 상부의 번두는 2등변 삼각형이나 꼭짓점 부분의 모서리가 모죽임이 되어 번신까지 내려온다. 감색, 흑색, 갈색 등 어두운 색으로 처리하고 그 표면에 오색실로 수놓은 복장 주머니 2개를 매달아 장식한다. 번신은 상하로 긴 장방형의 모양으로 글자를 수놓은 가운데 긴 천의 가장자리에는 다른 색의 천을 이어 붙여 만든다. 명호가 써지는 중앙부의 천은 주로 적색 비단을 사용하나 부처와 보살의 성격에 따라 그 색이 달라진다. 번수(幡手)와 번미(幡尾)는 간략화 되어 번신과 분리되지 않으며 마치 선을 돌린 것처럼 되어 있다.

번을 제작하는 천은 오방색(五方色)으로 동·서·남·북·중앙 등 다섯 방향을 의미하는 청색·황색·적색·백색·흑색을 사용한다. 현재 오래된 번은 거의 전하는 것이 없어 그 형태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번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 평번(平幡), 사번(絲幡), 옥번(玉幡) 등으로 구분된다. 평번은 비단으로 만들고, 사번은 여러 가닥의 실을 묶어서 만들고, 옥번은 금속과 옥석을 서로 연결하여 만든 번이다.

변천

조선초에는 중국 황제의 명을 받은 사신들이 금강산에 괘번을 하겠다고 청해 조선 조정에서 난감해 하는 사건이 수차례 발생했다. 세조대에는 황제로부터 직접 명을 받은 명의 사신이 금강산에 괘번을 하였으며(『세조실록』 14년 5월 11일), 성종대에도 중국 사신이 두목을 보내 금강산에 괘번을 하였다(『성종실록』 1년 5월 9일).

중국에서는 ‘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에 오르는 것이 소원’이라는 속담이 전해질 정도로 금강산이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중국의 황제들까지 사신을 통해 번을 보내 금강산 사찰에 달게 할 정도였다. 이는 『화엄경』에 등장하는 담무갈보살의 상주처가 조선의 금강산이라는 전설이 중국 불교계에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사신들이 금강산까지 다녀오는 경비나 인력이 만만치 않았고, 이 과정에서 국가 기밀이 누설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조선 조정에서는 사신들의 금강산행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사신들이 금강산으로 갈 때마다 조선 조정에서는 행로에 위치한 고을이나 여러 절의 사적(事迹)과 어압(御押)한 발미(跋尾), 안인도서(安印圖書) 등을 숨겨 국가 기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치했다(『세조실록』 14년 4월 11일). 하지만 조선중기 이후에는 사신들이 금강산으로 가겠다고 요청하는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 동국불교미술인회, 『사찰에서 만나는 불교미술 』, 대한불교진흥원, 2005.
  • 홍윤식, 『불교 의식구』, 대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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