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牌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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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상 상위 기관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지시 문서.

개설

패자(牌字)는 상급 기관 또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특정한 목적을 위해 지시하는 문서를 지칭하거나, 단순히 어떤 문서 자체를 지칭할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정확히 어떤 문서를 지칭하는지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내용

조선시대 문서 가운데 패자 또는 패지(牌旨)를 언급할 때 가장 일반적인 예는 토지나 가옥을 매매할 때 매물의 주인이 해당 매물의 거래 행위를 위임한 하인에게 써준 위임서 성격의 패자이다. 그 밖에 조선시대 궁방에서 궁방의 도장을 찍어서 세금 납부를 독촉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한 도서패자(圖書牌字), 관아나 서원 등에서 민인(民人) 등에게 각종 지시를 내리면서 발급한 패자가 존재하였다. 따라서 패자는 한 종류의 문서만을 특정할 수는 없고, 패자라는 범주 내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패자를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패자(牌字)’의 용례는 20건, ‘패자(牌子)’의 용례는 19건, 또 ‘패지’의 용례는 1건이 보인다. 구체적인 용례로는 승정원에서 발급한 패자(『세종실록』 21년 6월 26일), 대왕대비전의 도서가 찍힌 패자를 위조한 사건(『성종실록』 4년 11월 13일), 한성부에서 발급한 패자(『성종실록』 12년 1월 5일), 의금부에서 발급한 패자(『숙종실록』 28년 윤6월 20일) 등이 있다.

변천

조선에서 패자의 용도가 정확히 어떻게 변천되었는지를 정확히 고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패자의 기능이 여러 용도로 확대되어 간 것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원본 고문서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패자에 대해 논하면서 원래는 군령(軍令)을 서면으로 전달한 것에서 유래하였고, 조선에는 만력 연간에 명나라 군대가 들어오면서 전해진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조선전기부터 문서로서 패자가 사용된 용례가 확인되고 있으므로 정약용의 견해는 하나의 개인적인 견해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아언각비(雅言覺非)』
  • 최승희, 『(증보판)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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