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문(通化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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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동쪽 궁장에 있는 문.

개설

통화문(通化門)은 창경궁의 동쪽 궁장에 있는 문이다. 홍화문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선인문이, 그 대칭이 되는 위치에 통화문이 있는데 선인문보다 쓰임이나 권위가 낮은 문으로 판단된다. 선인문을 왕세자의 정문으로 여겼던 것에 비해 통화문은 죄인을 압송하거나 데려갈 때 출입하는 문으로 지정되곤 하였다. 그러나 통화문의 역할은 다양했기 때문에 이것이 통화문을 규정하는 표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위치 및 용도

창경궁의 동쪽 궁장을 여닫는 문은 남쪽부터 선인문, 홍화문, 통화문, 월근문이 순서대로 놓였다.

왕실에서는 오랫동안 병을 앓게 되었을 때 다른 궁궐로 피전을 하기도 하였는데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피전이 결정되었을 때, 왕에 앞서 아랫사람들이 창경궁으로 들어가 차비를 했는데 통화문을 열어 출입했다. 왕실의 친인척들이 아랫사람을 통해 문안을 하거나 문안 편지를 보낼 때도 궁궐 출입패인 신부를 차고 통화문을 통과해 들어가곤 하였다.

영조는 연잉군 시절에 관례를 치르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창덕궁 후방의 별당인 요화당이 의례의 장소로 정해졌으나 요화당의 권위로는 체통이 서지 않고, 미안한바가 있다는 여러 대신의 의견을 따라 통화문 안의 동쪽 월랑에서 관례를 치렀다(『숙종실록』 29년 12월 15일).

변천 및 현황

통화문은 성종대에 창경궁을 창건할 때 함께 조성되었다. 홍화문의 북쪽에서 동궐을 지키는 문으로 잘 유지되었으나, 1909년(융희 3)에 일제가 순종을 위로한다는 미명하에 창경궁을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유원지 또는 놀이 공간으로 만들어버렸으며, 동물과 식물들, 놀이기구와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 창경궁의 많은 공간을 차지하였다. 이때 창경원의 정문은 홍화문이었지만 좌우의 통화문과 선인문도 잘 남아있었다. 『동아일보』 1933년 5월 25일자에 ‘동물원 입구 통화문으로 변경’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떴다. “창경원의 정문인 홍화문을 수선하기 위하여 오는 25일로부터 2개월 동안, 그 문에서 북편으로 몇 십 간가량 되는 통화문을 사용하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이었다. 통화문은 적어도 1933년 7월까지는 있었는데, 언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1983년부터 시작된 창경궁 복원 사업에서 복원되지 않아 지금은 없는 문이다.

형태

궁궐문의 형태나 규모를 알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실물이 남아있거나, 「동궐도」나 「동궐도형」과 같은 도판·사진 등의 그림 자료를 통해서이다. 통화문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문이고, 「동궐도」와 「동궐도형」에서의 규모가 각각 달라 형태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우선 「동궐도」를 살펴보면, 통화문의 남쪽은 행각과 이어졌고, 북쪽은 담장으로 이어졌다. 1칸짜리 문이고 맞배지붕을 얹은 솟을문으로 문짝은 표현되어 있지 않고 가새형 구조물을 대놓았다. 그런데 「동궐도형」에는 통화문이 2칸 규모의 문으로 표현되었으며 홍화문과의 사이가 36칸 규모인 것으로 표기되었다. 수치에 대한 신뢰도는 「동궐도형」이 높다고 판단되고, 홍화문 좌우에 대칭된 문으로서, 문의 규모가 2칸으로 표현된 「동궐도」 상의 선인문을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2칸 문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주칠을 한 2짝의 판장문이 달렸다. 문짝을 열어놓을 때는 가새형 구조물을 대놓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관련사건 및 일화

1803년(순조 3)에 성균관에서 순조에게 한 사건을 고발했다. 조덕린이라는 자를 응징하려고 상소를 올리려 하는데 때마침 성균관의 우두머리인 장의가 출타하고 없었다. 그를 급히 데려와야 했기 때문에 노복과 말을 장의가 있는 곳으로 보냈는데, 통화문에 이르렀을 때 한 궁노가 길 건너에서 급히 다가와서는 말을 빼앗아 궁녀 하나를 태우고 그대로 가버렸다. 이 당황스러운 사건을 맞닥트린 성균관은 궁노를 찾아 엄벌해달라며 고발했다. 알아보니 용동궁의 궁노였고 이 일은 궁노를 귀양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순조실록』 3년 1월 11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은대조례(銀臺條例)』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