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제(野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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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의 장소가 실내외에 관계없이 행해지는 무속의례, 그중에서도 주로 병자나 사자(死者)를 위한 의례.

내용

일반적으로 들판이나 거리에서 행하는 제사라는 의미이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무속의례의 하나를 지칭하고 있다. 야제에는 무당들이 동원되었으며, 남녀가 함께 어울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어울리는 장이 되었다. 남효온(南孝溫)이 1485년(성종 16)에 개성을 여행하면서 지은 「송경록(松京錄)」에는 당시 야제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하는데, 지나가는 여행객에 불과한 남효온 일행은 모르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야제에 합류하여 주인 여자와 춤을 추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따라서 조선초기부터 야제는 풍기를 어지럽힌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마침내 법전에서도 이를 금지하는 규정이 명문화되었다. 즉 『경국대전』은 도성 내에서 야제를 거행하거나, 사족의 부녀로서 직접 야제에 참여하는 자는 장(杖) 100대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연산군은 총애하던 기생 월하매(月下梅)가 죽자 대궐에서 야제를 지냈으며, 1546년(명종 1) 호조 판서를 지낸 임백령(林百齡)의 부인이 죽은 남편을 위해 야제를 지낸 사실로 미루어, 조선시대를 통하여 이러한 금령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했는지는 의문이다.

용례

司憲府啓 無識之徒 惑於邪說 凡有疾病死亡 輒行野祭 以爲非此無以解祟 男女成群 招集巫覡 盛設酒肉 又引僧徒 邀置佛像 香花茶食 羅列于前 歌舞梵唄 交錯竝作 淫邪諂瀆 壞禮敗俗 莫此爲甚 請令守令嚴加禁理 如有犯者 官吏及里正長色掌 竝治其罪(『세종실록』 13년 8월 2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추강집(秋江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