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삼각산의(祭三角山儀)

sillokwiki
Silman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2월 9일 (토) 22:35 판 (XML 가져오기)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음력 2월과 8월에 지기(地祇)인 삼각산에 제사하던 의식.

개설

국가의 제사 대상 가운데 땅에 속한 것을 ‘지기’라 하고, 지기에 대한 의례를 ‘제(祭)’라고 한다. 지기에 속하는 산천은 그 중요도에 따라 중사(中祀)의 대상인 악(嶽)·해(海)·독(瀆)과, 소사(小祀)의 대상이 되는 명산대천으로 구분되었다. 조선시대의 삼각산은 중악(中嶽)으로, 중사의 대상이었다. 삼각산에 대한 제사는 서운관(書雲觀)에서 매년 두 차례 음력 2월과 8월에 길한 날을 가려 예조(禮曹)에 보고하면 예조에서 시행하였으며, 신에게 잔을 올리는 헌관(獻官)은 정2품관 중에서 임명하였다. 폐백으로는 중앙을 나타내는 색깔인 황색의 저포(苧布)를 사용하고, 희생으로는 돼지와 양을 각각 3마리씩 사용하였다.

연원 및 변천

1414년(태종 14)에 고려시대에 산천에 내렸던 봉작(封爵)을 폐지하고 그 제사를 유교적인 사전(祀典) 체제에 편입시키고 등급을 구분하였다. 그 결과 당·송의 제도에 근거하여 악·해·독은 중사로, 산천은 소사로 정하고, 지리산, 삼각산, 송악산, 비백산을 악(嶽)으로 규정하였다(『태종실록』 14년 8월 21일).

삼각산의 묘제(廟制)는 원래 작은 담이 하나 있고 제단은 없으며, 묘(廟) 3칸으로 구성되었다. 1414년에 삼각산의 신위를 백악사(白岳祠)로 옮겨 와 백악산 신주에 짝하게 하면서, 삼각산의 신위는 북쪽에 두고 남향하게 하였으며 백악산의 신위는 동쪽에 두고 서향하게 하였다(『태종실록』 14년 7월 25일). 삼각산은 중사의 대상이고 백악산은 소사의 대상이므로 삼각산의 신위를 정위(正位)로 한 것이다. 1430년(세종 12)에는 삼각산의 사당에 제묘(祭廟) 3칸만 있어 규모가 작고 부속 시설이 없다 하여, 따로 재려(齋廬)와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을 설치하도록 하였다(『세종실록』 12년 2월 19일).

절차 및 내용

의식은 의례를 거행하기 전의 준비 과정과 당일의 의례 절차로 구분된다. 재계(齋戒), 진설(陳設), 성생기(省牲器) 등이 준비 과정에 속한다. 먼저 재계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하는 일을 말하는데, 예조의 요청에 따라 5일 동안 행한다. 3일 동안은 산재(散齋)라 하여 평소처럼 일하면서 음식과 행동을 삼가고, 2일 동안은 치재(致齋)라 하여 오직 제사와 관련된 일만 행한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제삼각산의 재계). 진설은 제사 2일 전에 사당을 청소하고 제사에 사용할 집기 및 그것을 보관할 장막을 설치하는 일과, 제사 하루 전에 제사에 참석할 사람들의 자리와 의례 절차를 행할 자리를 정하고 신위를 놓아두는 신좌(神座)를 설치하는 일 등을 말한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제삼각산의 진설). 성생기는 희생으로 사용할 양 3마리와 돼지 3마리 및 음식을 담는 찬구(饌具)가 합당한지 살펴보고, 희생을 잡는 일을 가리킨다.

행사 당일의 의례 절차는 사배례(四拜禮), 전폐(奠幣), 삼헌(三獻), 음복수조(飮福受胙), 철변두(徹籩豆), 망예(望瘞)의 순서로 진행된다. 축시(丑時) 5각(刻) 전에 신위판을 설치하고, 제사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과 헌관은 축시 전에 정해진 자리로 나아간다. 헌관이 자리에서 4번 절하면 참석자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4번 절하며 신을 맞이하는데, 이를 사배례라고 한다.

전폐는 헌관이 향을 3번 올린 뒤 미리 준비한 폐백을 신위 앞에 놓는 일을 말한다. 폐백은 자의 한 종류인 조례기척(造禮器尺)을 기준으로 1장 8척 길이의 황색 저포를 올린다. 이는 삼각산이 방위상 가운데에 해당하는 중악이므로, 중앙을 상징하는 색깔인 황색을 사용한 것이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서례 폐백). 삼헌은 신에게 술잔을 3차례 올리는 일을 가리킨다. 첫 번째 잔을 올리는 것을 초헌, 두 번째를 아헌, 세 번째를 종헌이라 하고, 잔을 올리는 재관을 차례로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이라고 한다. 초헌 때는 정위인 삼각산의 신위 앞에 먼저 잔을 올린 뒤 축문을 읽고, 다음으로 배위인 백악산의 신위 앞에 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다. 아헌과 종헌 때는 축문을 읽는 절차 없이, 먼저 삼각산의 신위 앞에 잔을 올리고 다시 백악산의 신위 앞에 잔을 올린다.

제사를 지내는 데 사용한 술은 복주(福酒), 고기는 조육(胙肉)이라고 하는데, 헌관이 조육을 받고 복주를 받아 마시는 절차를 음복수조라고 부른다. 여기까지가 신을 모시고 경건하게 예를 행한 뒤 복을 받는 절차이다. 음복수조가 끝나면 모신 신을 돌려보낸다는 의미에서 철변두를 행한다. 철변두는 제기인 ‘변(籩)’과 ‘두(豆)’를 거둔다는 뜻이지만, 실제 의례에서는 변과 두를 조금씩 움직여 놓는다. 그런 다음 헌관이 4번 절하여 송신(送神)의 절차를 마치면, 제사에 사용한 축판과 폐백을 미리 준비한 구덩이에 묻는데 이를 망예라고 한다. 구덩이의 흙을 반쯤 덮으면 헌관이 먼저 퇴장하고, 이후 다른 참석자들도 4번 절하고 나간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 한형주, 『조선 초기 국가제례 연구』, 일조각, 200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