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具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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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57년(영조 33)∼1832년(순조 32) = 76세.] 조선 후기 정조~순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이다. 자(字)는 공휴(公休)이고, 호(號)는 휴휴(休休)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장악원 첨정(僉正)구윤빈(具允斌)이고, 어머니 신씨(申氏)는 부사과(副司果)신긍구(申肯構)의 딸이다.

정조 시대 활동

1795년(정조 19) 사마시(司馬試)에서 진사(進士)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39세였다.[<사마방목>]

1798년(정조 22) 사릉참봉(思陵參奉)에 임명되었다.

1800년(정조 24) 별시(別試) 문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44세였다.[<문과방목>] 바로 승정원 가주서(假注書)에 보임되었다.

순조 시대 활동

1803년(순조 3) 성균관 전적(典籍)이 되었고, 이듬해 수안군수가 되어 외방으로 나갔다.

1806년(순조 6) 사헌부 장령(掌令)이 되었다가, 1808년 사간원 정언(正言)으로 임명되었다.

1812년(순조 12) 종부시 정(宗簿寺正)을 지냈고, 1813년(순조 13) 함경도 암행어사에 임명되었는데, 관북 일대 24읍 5,700리에 달하는 험준한 노정을 마다않고 다니며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장편시 「북정(北征)」을 비롯하여, 장편국문 가사인 「북새곡(北塞曲)」 등을 남겼다.

1814년(순조 14) 사간원 사간(司諫)이 되었다가, 이듬해 사헌부 집의(執義)로 전임되었다.

1818년(순조 18) 승지에 발탁되었으며, 이듬해 회양부사로 부임하였다. 이때 현지에서 보고 겪은 일을 가사로 지은 『교주별곡(交州別曲)』이 전해진다.

1820년(순조 20) 다시 조정으로 들어와 부승지를 거쳐 공조 참의를 역임하고, 1822년(순조 22)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에 임명되었다.

1824년(순조 24) 시강원 보덕(輔德)을 거쳐서, 1828년(순조 28) 중추원 첨지사(僉知事)가 되었다. 저서로는 가사집 『북새곡』과 문집인 『휴휴집』이 남아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일성록(日省錄)』[정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북새곡(北塞曲)』
  • 『순재고(純齋稿)』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휴휴집(休休集)』
  • 능성구씨대종회, 『능성구씨문헌록』, 1989.
  • 박요순, 『한국고전문학신자료연구』, 한남대학교출판부,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