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제석원(內帝釋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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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태조 왕건(王建)에 의해 개경의 궁궐 내에 건립되었다가 조선 건국 초기에 폐지된 불교 사원.

내용

919년(고려 태조 2년) 태조 왕건은 철원에서 송악으로 도읍을 옮긴 뒤 성 안에 내제석원(內帝釋院)을 비롯하여 법왕사(法王寺), 왕륜사(王輪寺) 등 모두 열 개의 사찰을 세웠다. 그리고 내제석원 건립 후 5년이 지난 924년(고려 태조 7)에는 궁성 밖에 외제석원(外帝釋院)을 건립하였다. 제석원이 ‘내·외’로 지칭된 것은 궁궐의 안과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1126년(고려 인종 4)에 있었던 이자겸의 난 때 반란군들이 왕궁에 불을 지르자 경령전(景靈殿)에 있던 역대 왕들의 영정을 백사청(白思淸)을 시켜 내제석원에 있는 마른 우물에 넣도록 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내제석원은 경령전에서 멀지 않은 궁궐 후원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제석원은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었고, 고승(高僧)이 머물던 중요한 사찰이었다. 또한 제석신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왕실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이곳에서 왕의 만수무강과 왕실의 안녕을 비는 예불이 거행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숭유억불 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1394년(태조 3)에 내제석원은 도량고[道場庫]와 함께 폐지되었다.

용례

罷道場庫, 內帝釋院, 置福興庫(『태조실록』 3년 8월 22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서윤길, 「고려의 제석신앙」, 『불교학보』15 , 1978.
  • 안지원, 「고려시대 제석신앙의 양상과 그 변화」, 『국사관논총』78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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