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소감(闡義昭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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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721년(경종 1)부터 1755년(영조 31)까지의 영조(英祖)의 집권 의리(執權義理)를 천명한 의리명변서(義理明辯書)다.

개설

이 책의 저술은 세자 책봉을 에워싸고, 갖은 음모와 풍파가 자심하므로, 역사적인 사실을 적어 후세의 거울로 삼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인용된 사건으로는 노론·소론의 당쟁이 치열하던 1728년(영조 4), 1730년(영조 6), 1748년(영조 24) 등의 화란(禍亂)과 을해옥사(乙亥獄事), 1755년(영조 31)의 사건이 소상히 적혀 있어, 이것을 통하여 건저(建儲)의 의(義)를 후세에 밝히고, 하나의 교훈을 남기도록 하였다. 따로 언해(諺解) 4권이 전한다.

편찬/발간 경위

『천의소감(闡義昭鑑)』은 조선 영조 대에 왕명에 따라, 1755년(영조 31) 김재로(金在魯)·이천보(李天輔) 등이 편찬하여, 왕세자(王世子) 책봉(冊封)의 의의를 밝힌 책이며, 세자 책봉을 에워싸고, 갖은 음모와 풍파가 자심하므로, 역사적인 사실을 적어, 후세의 거울로 삼는 데 목적이 있었다. 『천의소감』에 인용된 사건으로는 노론·소론의 당쟁이 치열하던 1728년, 1730년, 1748년 등의 화란과 1755년에 소론의 윤지(尹志)의 주도 아래 일어난 나주벽서사건(羅州壁書事件)에 연루된 소론을 노론이 정권에서 몰아낸 을해옥사, 1755년의 사건이 소상히 적혀 있어, 이것을 통하여 왕의 계승자로서 왕세자를 책봉하는 건저의 의를 후세에 밝히고, 하나의 교훈을 남기도록 하였다.

서지 사항

4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활자본이다. 4주쌍변이고, 반엽광곽은 25.5×17.3cm이다. 10행 18자, 주쌍행, 상하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5.5×23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된 이후 1755년 나주벽서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여러 차례 역모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영조는 그 원인이 세제 책봉을 둘러싼 분규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세제 책봉이 정당한 처사였음을 밝혀, 그 경위를 후세에 전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편찬하였다.

편찬 책임자는 영중추부사김재로, 영의정이천보 등이다. 서두에 영조의 비답(批答: 질의에 대한 답변)을 판각한 수서차비(手書箚批: 손수 쓴 상소문이나 비답)와 유음(諭音: 신하가 아뢴 질문에 왕이 답변함)인 어제유찬수제신(御製諭纂修諸臣)·윤음(綸音)·진천의소감차자(進闡義昭鑑箚子)·진천의소감전(進闡義昭鑑箋)·범례 등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소론· 남인의 제거 사건에 대한 영조의 태도와 언급은 전후 연교(筵敎: 경연이나 서연에서의 강론)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 요점만을 뽑아 기록하고, 사건 자체의 기록은 소계(疏啓: 상소와 계문)·연주(筵奏: 경연에서의 품주한 내용)·국안(鞫案: 죄인을 신문한 사건 기록서)에서 초록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평론은 사실 기사 뒤에 기록하고, 중요 사건은 월· 일 간지를 기록하였다.

권1에는 신임사화(辛壬士禍)의 전말이 기록되어 있다. 1721년(경종 1)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의 세제 책봉과 이어, 세제의 대리청정을 둘러싼 노론·소론간의 당쟁의 격화, 노론의 몰락 및 소론의 득세 과정, 박상검(朴尙儉) 등의 세제 모해 사건과 1722년(경종 2) 목호룡(睦虎龍)의 고변(告變)으로 노론 4대신이 사사되는 임인옥(壬寅獄)까지의 사실을 수록하였다.

권2에는 1724년 경종이 죽고 영조가 즉위해 김일경(金一鏡)·목호룡 등이 처형되고, 소론 정권이 실각하는 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권3에는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노론 정권이 실각하고 소론이 정권을 잡는 과정과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의 전말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또한 1730년(영조 6) 종실 이해(李垓)·이기(李圻) 및 나홍언(羅弘彦)의 역모 사건과 1748년(영조 24) 권집 등이 종실 여천군(驪川君)을 옹립하려다가 발각되어 처형된 사건 등이 기술되어 있다.

권4에는 1755년 나주벽서사건으로 윤지 이하 많은 소론과 남인의 인사가 연루되어 처형된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벽서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토멸령(討滅令)이 전개되고,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처벌 기록을 수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큰 충격을 받은 영조는 세제 책봉에 반대한 소론의 조태구(趙泰耉)·유봉휘(柳鳳輝) 등 이미 죽은 사람에게도 역률(逆律: 반역에 대한 죄율)을 소급해 다스리고, 대리청정을 반대한 이광좌(李光佐) 등에게도 관직을 추탈해 세제 책봉이 정당한 처사였음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왕권에 도전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종친· 측근 신하를 막론하고, 극형에 처한다는 것을 명시하였다. 말미에는 남유용(南有容)의 발문(跋文)과 김재로 이하 봉교(奉敎: 왕의 교시를 받듦) 등 편찬에 참여한 사람의 명단을 실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신임사화를 비롯한 노론과 소론간의 당쟁의 양상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며, 특히 영조의 탕평책의 성립과 전개 과정을 연구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단 노론의 입장에서 편찬했기 때문에 소론의 사정이 무시된 사료적 한계를 지닌다.

참고문헌

  • 김백철, 「英祖의 義理明辯書 『闡義昭鑑』 편찬과 정국변화-堯舜의 두 가지 얼굴, 탕평군주와 전제군주의 경계-」, 『정신문화연구』 제33권 제4호 통권121호, 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 옥영정, 「『闡義昭鑑』의 간행과 서지적 특성」, 『정신문화연구』 제33권 제4호 통권121호, 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 이성무 외, 『조선후기 당쟁의 종합적 검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 이은순, 「18세기 노론과 일당전제의 성립과정-신임사화와 천의소감의 논리를 중심으로-」, 『역사학보』 제110호, 역사학회, 1986.
  • 임기영, 「『闡義昭鑑』에 대한 書誌的 연구」, 『영남학』 제19호,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소, 2011.
  • 정만조, 「영조대중반의 정국과 탕평책의 재정립-소론탕평에서 노론탕평으로의 전환-」, 『역사학보』 제111호, 역사학회,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