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방(龍虎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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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과와 무과의 급제자 이름을 게시하던 나무판이나 종이.

개설

조선은 고려와 달리 무과를 신설한 뒤, 무과의 실시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문과를 실시할 때에는 반드시 무과도 실시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문과와 무과는 최종적으로 선발한 급제자도 함께 발표하였는데, 문과에서는 용과 같은, 무과에서는 호랑이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뽑았다는 것을 의미하여 문무과 급제자 명단의 발표에 대하여 용호방(龍虎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내용 및 특징

중앙집권적 양반 관료 체제를 완비한 조선은 체제를 이끌어 나갈 문반 관원과 무반 관원을 선발하기 위하여 문과(文科)와 무과(武科)를 실시하였다. 문과에서는 경학(經學)에 대한 이해, 문장 제술 능력, 현안에 대한 인식과 대책 마련의 능력을, 무과에서는 무경(武經)에 대한 이해와 무예(武藝)를 응시생들에게 각각 요구하였다. 국가에서는 문과와 무과에 여러 차례의 시험 절차를 두어 엄선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선발한 급제자(及第者)의 이름을 나무판이나 종이에 써서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높이 게시하였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내용을 알아볼 수 있도록 나무판이나 종이에 써서 높이 게시하는 것을 방(榜)이라고 하였다. 특히, 문무과 급제자를 발표하는 것에 대해서는 용호방(龍虎榜)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것은 문과에서는 용과 같은, 무과에서는 호랑이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뽑았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용호방의 사례는 1777년(영조 51)에 왕이 “용호방을 갖추어 집경당(集慶堂)에서 창방(唱榜)하도록 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에서 확인되었다(『영조실록』 51년 11월 16일).

문무과 급제자의 명단을 발표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호방은 간혹 문과와 무과를 나누어 문과 급제자의 명단을 발표하는 것을 용방(龍榜), 무과 급제자의 명단을 발표하는 것을 호방(虎榜)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용방 사례는 정두경(鄭斗卿)의 문집인 『동명집(東溟集)』에서 찾을 수 있는데, 정두경은 사촌 동생인 정진백(鄭震伯)의 넋을 기리는 제문(祭文)에서 “약관(弱冠)의 나이에 이름이 여러 선비를 압도하였으며, 문사(文辭)를 지어내면 파도가 용솟음치는 듯하여, 드디어 용방에서 수석(首席)을 차지해 온 삼한 땅에 이름이 진동하였다.”라고 표현하였다.

참고문헌

  • 『동명집(東溟集)』
  • 차미희,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유생의 삶』,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