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栗)

sillokwiki
Silman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1월 1일 (월) 21:09 판 (XML 가져오기)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너도밤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인 밤나무의 열매.

개설

밤나무는 5~6월에 개화하여 9~10월에 열매를 맺는다. 가시처럼 돋은 단단한 밤송이 안에 1~3개의 열매가 열리는데, 날로 먹거나 삶거나 구워서 먹기도 하고, 다른 음식을 만들 때 부재료로 이용한다. 관혼상제(冠婚喪祭)에 빠지지 않는 과실로 조선에서는 왕실의 의식에 반드시 쓰였다. 율자(栗子)라고도 한다.

내용 및 특징

한국은 예로부터 밤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삼국지(三國志)』「위지동이전」, 『후한서(後漢書)』, 『수서(隋書)』, 『북사(北史)』, 『문헌통고(文獻通考)』 등 옛 중국의 문헌에 마한(馬韓)에서는 굵기가 배만한 밤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서긍(徐兢)이 고려에서 가장 맛있는 과실은 밤인데, 그 크기가 복숭아만 하다고 하였다. 또 『동문선(東文選)』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변산(邊山)의 산중에는 더욱 밤[栗]이 많아 이 고장 사람들이 해마다 양식의 일부를 삼는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마한과 백제 지역이었던 충청도와 전라도는 예로부터 밤농사로 유명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황해도, 평안도, 함길도의 36개 군현에서 밤이 토산으로 생산된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라도에는 밤이 적률(赤栗)·가시율(加時栗)로 두어 종 있다고 하였다. 또 경상도의 토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원종(元宗) 때에 조양필(趙良弼)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밤 열매를 구해 돌아와 의안현(義安縣)에 심도록 명하였고, 충렬왕(忠烈王) 때에는 역관을 원(元)나라에 보내 밤을 바쳤다고 하였다.

황률(黃栗)은 중국 사신의 위연(慰宴)과 일본국통신사사목(日本國通信使事目)에 포함되었고, 호조(戶曹)의 관리 아래 한양과 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 나누어 배정하였다(『세종실록』 3년 9월 25일). 밀양(密陽)의 밤이 좋기로 유명하여 진상되었고, 성종대에는 밀양부사(密陽府使)박시형(朴時衡)이 뇌물을 준 품목에 밤이 있었다(『성종실록』 9년 6월 22일).

밤은 왕실의 의례를 거행할 때에 빠져서는 안 되는 과실이었다. 『만기요람(萬機要覽)』의 진상품목에 생률(生栗)과 황률이 기록되어 있다. 왕실의 제사를 지낼 때 황률은 변(籩)에 담아 둘째 줄에 마른 대추(乾棗)와 개암[榛子]과 함께 왼편에 놓였다(『세종실록』 28년 4월 24일). 밤은 다남(多男)을 상징하는 과실로 혼례 때도 쓰였다. 시부모에게 올리는 폐백에서 신랑신부가 절을 하면 시부모는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의미로 며느리에게 밤을 던져 준다. 이런 풍속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에서 볼 수 있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의하면, 밤에는 생률·숙률(熟栗)이 따로 있고, 마른 밤은 율저(栗諸)라 한다고 하였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생밤을 저장하는 법과 황률을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먼저 생밤을 저장하는 법은 “저절로 떨어진 것을 물에 담가서 뜨는 것은 없애고 잠깐 널어서 물기를 없앤다. 독 속에 넣고 모래를 볶아서 식으면 모래를 한 벌 깔고 밤 한 벌을 까는 식으로 켜켜로 둔다. 독에 너무 가득하게 넣지 말고 낙엽을 두껍게 덮고 그릇을 엎고 황토로 봉하여 술독에 가까이 두지 않으면 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밤은 가을철에 수확을 하는데 요즈음처럼 저장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려서 황률을 만들었다. 『규합총서』에는 “황률 말리는 법은 밤을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가 급히 문질러 씻어 마르면 베자루에 넣어 해를 등지고 바람받이에 둔다. 자주 흔들어 발로 혹 밟아 말리면 썩지 않는다. 물에 담가 밤 동안 재워 급히 문질러 씻으면 껍질이 잘 벗겨진다. 밤이나 은행이나 삶을 적에 유지를 같이 넣어 삶으면 껍질이 저절로 벗겨진다.”고 하였다.

밤은 생으로 먹거나 삶아서 껍질을 벗겨서도 먹지만, 삶은 밤이나 말린 황률을 가루 내어 죽이나 병과류(餠果類)의 재료로 이용하였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의 글을 인용하여 밤죽[栗子粥]은 “밤껍질을 벗겨 내고 쌀알만큼 잘게 썰어, 멥쌀 1되에 밤 살 2홉의 비율로 한데 끓인다.”고 하였다. 『온주법(蘊酒法)』에서 밤다식은 “황률 간 것 5되와 백편가루 5되를 생꿀을 묻혀 박는다. 혹 녹말도 섞어 박고 사탕도 섞는다. 더디게 말면 벌레가 생긴다.”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특히 밀양과 상주(尙州) 사람들이 잘 만드는데, 다른 고을에서 만든 것은 매워서 먹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밤은 단자, 설기떡, 주악 등의 떡을 만드는 데도 이용하였다. 『술 만드는 법』에 기록된 밤단자를 만드는 법은 “밤을 삶아 거르고,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삶는다. 홍두깨로 꽈리가 일게 쳐서 밤에 꿀물을 묻히고 소를 넣은 다음, 밤가루를 묻혀 쓴다.”고 하였다.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 기록된 밤설기떡 만드는 법은 “밤이 많고 적음을 헤아리지 말고 그늘에 말려서 찧은 후 체로 쳐서 만든 가늘고 고운 가루에 찹쌀가루를 섞은 다음 꿀물에 반죽하여 윤기 나게 한다.”고 하였다. 이 설기떡을 ‘고려율고(高麗栗糕)’라고 한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설기떡이 고려시대에 이미 한국에서 중국으로 전해져서 『준생팔전(遵生八牋)』 같은 중국의 책에도 그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인기가 있는 유명한 떡이라고 전하고 있다. 조선순조 때 박사호(朴思浩)가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쓴 사행일기(使行日記)인 『심전고(心田稿)』에도 압록강을 건너서 여기까지 수천 리에서 이 떡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규합총서』, 『술 만드는 법』,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에 기록된 밤주악 만드는 법은 밤가루를 깁체에 쳐서 꿀을 넣은 후 다식 반죽보다 질게 한다. 여기에 잣가루, 계피가루, 건강가루를 섞는다. 꿀에 버무린 것을 소로 넣고 작게 만두과처럼 가장자리를 틀어 살을 잡아 빚은 다음 위에 꿀을 바르고 잣가루를 묻힌다.

밤은 알밤뿐만 아니라 꽃과 그 꽃에서 얻는 꿀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밤꽃은 연노란색으로 무리를 지어 길쭉하게 핀다. 진한 향을 내는 밤꽃으로는 술을 담글 수 있다. 꽃가루가 날리기 전에 꽃을 채취하여 깨끗하게 씻은 후 물기를 제거하여 밑술과 버무려 술을 빚거나 꽃을 말려서 덧술을 할 때 밥과 함께 쪄서 밑술에 섞어 술을 빚는다. 5~6월 중순경이면 밤꽃에서 꿀을 채취하는데, 이른바 밤꿀이다.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주로 생산되지만 생산량은 적은 편이다. 특유의 짙은 갈색을 띠고, 맛과 향도 강하고 약간의 쓴맛이 있다. 소화기와 호흡기 질환에 효능이 있고, 항산화와 항균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밤은 구황 식품으로도 이용되었다. 태종대에는 비상시를 대비하여 진자(榛子)·밤·밀랍(蜜蠟) 등을 축적해 놓도록 하였고(『태종실록』 14년 7월 12일), 병조(兵曹)에서 여러 도의 별패(別牌)를 놓아 보내 귀농(歸農)하게 하여 밤을 주워 식량의 수용을 넉넉하게 하고 방패군(防牌軍)으로 대직(代直)하게 하였다(『태종실록』 15년 6월 5일).

조선에서 백성들의 식생활에 산나물이나 들나물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채(蔬菜)는 무성한 숲이나 우거진 풀 사이에서는 잘 자라지 않고 반드시 불태운 곳에서 푸르고 연하게 되므로 초목을 불태우는 일이 많아지자 초목이 자랄 수 없었다. 그래서 흉년에 상수리와 밤을 주워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게 되어 산과 들을 불태우는 것을 금하였다(『세종실록』 19년 1월 2일). 또한 밤은 세조대에 실제로 구황 식품으로 이용되었다(『세조실록』 1년 7월 24일). 『산림경제(山林經濟)』「구황(救荒)」편에도 생률을 구워 먹으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다고 했다. “황률·홍조(紅棗)·호도(胡桃)·건시(乾柹) 이 네 가지의 과실은 씨와 껍질을 없애고 방아 안에 넣고 함께 찧는다. 이것으로 둥글고 두터운 떡을 만들거나, 박아서 벽돌처럼 만든 다음 볕에 말렸다가 먹는다. 옛날에 기이한 중이 있었는데, 미리 이것을 여러 해 동안 구하여 많이 모아 두었다. 그 후 흉년이 되자 이것을 먹고서 살아났다.”고 하였다.

변천

밤은 아시아·유럽·북아메리카·북아프리카 등이 원산지이며, 현재 각국에서 밤이 생산된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밤은 재래종 중 우량종과 일본 밤을 개량한 품종이다. 과거 중국의 문헌에서 칭찬했던 마한의 밤과 서긍이 좋아했던 고려의 큰 밤은 아니더라도 한국의 밤은 서양 밤에 비해 육질이 좋고, 단맛이 강해 고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계곡집(谿谷集)』
  • 『고려도경(高麗圖經)』
  • 『규합총서(閨閤叢書)』
  • 『도문대작(屠門大嚼)』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동문선(東文選)』
  • 『만기요람(萬機要覽)』
  • 『목은집(牧隱集)』
  • 『산림경제(山林經濟)』
  • 『성호사설(星湖僿說)』
  • 『술 만드는 법』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심전고(心田稿)』
  • 『온주법(蘊酒法)』
  •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