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필제(崔必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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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70년(영조 46)~1801년(순조 1) = 32세]. 조선 후기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천주교도로,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이며,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최종익(崔宗益)이다.

정조~순조 시대 활동

서울의 중인 의원 집안에서 태어난 최필제(崔必悌)는 20세가 되던 1790년(정조 14) 사촌 형인 최필공(崔必恭)과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사도’라고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사학징의(邪學懲義)』] 1791년(정조 15) 전라도 진산의 천주교도들이 어머니 제사를 폐하여 문제가 된 <신해박해(辛亥迫害)> 때 최필공과 같이 체포되었으나, 천주교를 배교하기로 약속하고 석방되었다.(『정조실록(正祖實錄)』 15년 11월 11일),[『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정조 15년 11월 11일],[『승정원일기』정조 15년 11월 12일] 그는 석방된 후에는 천주교를 배교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던 최필공을 대신하여 최필공이 천주교를 버렸다는 거짓 자백서를 써서 관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후 최필제는 다시 신앙을 되찾아 열심히 교회 일에 참여하며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동료 신자들과 함께 교리를 공부하고 새로 들어온 교우들을 자기 집에 모아 교리를 가르쳤다. 1794년(정조 18)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후에는 그를 찾아가 성사를 받으며 미사에 자주 참례하였다.[『사학징의』] 그러다가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직전인 1800년(순조 즉위년) 12월 19일 자신의 약국에서 동료들과 모임을 갖던 중에 포졸들에게 잡혀 형조로 끌려갔다. 당시 포졸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러 왔던 것이 아니라 최필공의 약국 앞을 지나는데 투전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 들어왔다. 그런데 그 소리는 투전소리가 아닌 천주교 신자들이 가슴을 치며 기도를 드리는 소리였다. 당시 최필공의 약국에 뛰어 들어온 포졸들은 사람들의 몸을 뒤지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천주교 축일표만을 발견했다. 그러나 아무도 글을 읽지 못해 글을 아는 동료들에게 그것을 가지고 가서야 그것이 천주교에 관한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포졸들이 신자들을 체포하러 다시 돌아왔으나 모두 도망가고 최필제와 오현달(吳玄達)만이 남아 있었으므로 이 두 명만 체포하였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최필제가 체포되자 그의 부친은 놀란 나머지 병사하였다. 부친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최필제는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형조에 요청하였고, 감옥에서 나와 부친의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옥에 갇혔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사학징의』] 이후 최필제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천주교 신앙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후 1801년(순조 1) 4월 2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사망하였다.(『순조실록(純祖實錄)』 1년 4월 1일) 당시 그의 나이 32세였다.

성품과 일화

최필제의 성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최필제는 본래부터 진실하고 후덕한 성품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어질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의 약국에서 파는 약은 값이 싼데다가 약제도 좋아 모두 그를 신용하였다고 한다. 1801년 부친상으로 잠시 석방되었다가 다시 옥으로 돌아가기 직전 형조의 관리들은 최필제에게 넌지시 도망할 것을 귀띔하기도 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였다. 그리고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나는 마귀에게 원수를 갚고 전에 내가 배교하였던 일을 보속하려 하네. 나의 가장 큰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내 머리를 바치는 것일세.”라고 하며 순교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한국천주교 주교회의,『하느님의 종 125위 약전』]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사학징의(邪學懲義)』
  •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하느님의 종 125위 약전』, 2009.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11,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