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공주(慶安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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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393년(태조 2)~1415년(태종 15) = 23세]. 조선 제 3대 임금인 태종(太宗)의 딸로 공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이다. 부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길천군(吉川君)권규(權跬)이다. 세종(世宗)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출생 및 사망

경안공주는 1393년(태조 2)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의 4남 4녀 가운데 3녀로 태어났으며,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1403년(태종 3) 권근(權近)의 아들 권규와 혼인하였다.(『태종실록』 3년 12월 18일)

그러나 경안공주는 1415년(태종 15) 발열 증세를 보이다가 2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태종실록』 18년 4월 4일) 태종은 경안공주를 애도하기 위하여 3일간 조회를 정지하였으며, 한동안 육선(肉饍)을 물리고 먹지 않았다.(『태종실록』 15년 4월 22일),(『태종실록』 15년 5월 2일) 이런 가운데 경안공주의 장례는 불사(佛事)를 거부한 부마 권규의 뜻에 따라 불교식이 아닌 『예경(禮經)』대로 행하는 유교식으로 치러졌는데, 태종은 하윤(河崙) 등에게 물어 제사를 내리기도 하였다.(『태종실록』 15년 4월 22일),(『태종실록』 15년 6월 13일) 한편 경안공주가 발열 증세를 보일 때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병이라고 하였는데, 1418년(태종 18) 성녕대군(誠寧大君)이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내의원에서 경안공주와 성녕대군의 병명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였다며 의원 양홍달(楊弘達)은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만들었다.(『태종실록』 18년 4월 6일) 또 박거(朴居) 등의 다른 의원들도 장형에 처하였다.(『태종실록』 18년 4월 11일)

성품과 일화

경안공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숙하고 예뻤으며, 총명과 지혜도 보통 사람과 달라 임금과 중전의 사랑을 한데 받았다. 길천군권규에게 시집가니, 부덕(婦德)이 있어서 시부모를 섬기는데 예절을 극진히 하였고, 가정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다.(『태종실록』 15년 4월 22일)

경안공주와 충녕대군(忠寧大君 : 세종)은 천성과 기품이 서로 닮아 궁중에서 그 어짊을 함께 일컬었다. 경안공주는 매번 충녕대군의 덕기(德器)가 날로 이루어짐을 감탄하였으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태종실록』 15년 4월 22일)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덕평리에 있다. 위에는 부마 권규의 묘소가 있고, 바로 아래 경안공주의 묘소가 있는 상하합장묘 형태이다. 2007년 ‘제간공권규묘역(齊簡公權圭墓域)’이라는 명칭으로 경기도 기념물 제214호로 지정되었다.

경안공주와 부마 권규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1남은 권담(權聃)이고, 2남은 권총(權聰)이며, 1녀는 어려서 세상을 떠났다. 1413년(태종 13)에 태어난 차남 권총은 경안공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 3살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9살이 되던 1421년(세종 3) 부마 권규도 세상을 떠났으므로, 이후 권총은 궁중에서 자랐다.(『성종실록』 11년 2월 11일)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국조보감(國朝寶鑑)』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동문선(東文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양촌집(陽村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태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