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朴慶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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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60년(명종 15)~1626년(인조 4) = 67세]. 조선 중기 선조~인조 때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이다. 자는 중길(仲吉)이고, 호는 한천(寒泉)·삼곡(三谷)이며,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아버지는 장령(掌令)박사공(朴思恭)이며, 어머니 남원윤씨(南原尹氏)는 윤징(尹澄)의 딸이다. 부인 청송심씨(靑松沈氏)는 심우선(沈友善)의 딸이다.

선조 시대 활동

1582년(선조 15) 사마시(司馬試)에 진사(進仕)로 합격하였고, 그 해에 바로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는 청도 조전장(淸都助戰將)으로 참전하고, 순변사(巡邊使)이일(李鎰)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동하였다. 1593년(선조 26) 해주 목사(海州牧使)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해주(海州)는 왜변(倭變)이 발생한 뒤로 백성들이 굳은 의지가 없어져 읍(邑)이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지경이었다. 그가 부임하여 잘 다스리니 민정(民情)이 기뻐하였다. 박경신은 젊은 문관(文官)으로 강자(强者)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주전(厨傳)과 쇄마(刷馬) 등의 일을 일체 검소하게 하여 백성들의 힘이 펴지게 하였으며, 과거에 무부(武夫)들이 으레 받던 인정(人情)의 폐습을 통렬히 개혁하였다. 그리고 이때 수양 산성(首陽山城)을 수축하여 방비 태세를 굳건히 하였다. 1594년(선조 27) 밀양부사(密陽府使)로 부임해서는 관민을 불러 모아 훈련시켜 전시 태세를 갖추고 전공을 세워 포상을 받았다. 1595년(선조 28) 10월 전주부윤(全州府尹)에 임명되었는데, 부임한지 3년되던 해인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다. 박경신은 지극한 정성으로 군민을 개유하여 죽음으로써 성을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이 아직 경내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먼저 겁을 먹고 성을 버리고 달아나서 파직당하였다. 전란이 평정된 뒤 다시 서흥부사(瑞興府使)에 기용되었다. 1604년(선조 37)에 영흥부사(永興府使), 1605년(선조 38) 9월에 삼척부사(三陟府使)가 되었다. 1607년(선조 40) 2월에 형조 참의(參議)로 승진하였다.

광해군~인조 시대 활동

1611년(광해군 3)에 양주 목사(楊州牧使), 1614년(광해군 6)에 광주 목사(光州牧使)를 역임하였다. 1616년(광해군 8) 1월에는 도총관(都摠管)이 되었고, 9월에는 주청부사(奏請副使)가 되었다. 1617년(광해군 9)에는 판결사(判決事)가 되었는데, 이때 그는 인목대비(仁穆大妃)에 대한 폐모론에 동조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6월에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가 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윤2월에 분 병조 참판이 되었다. 1622년(광해군 14) 10월에 공홍도 관찰사(公洪道觀察使: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자 광해군 때의 행적에 대한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1624년(인조 2) 1월 발생한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가 파천할 때에 박경신은 인조를 호종(扈從)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장 뒤에 성을 나가 서울과 가까운 곳에서 배회한 자취가 있어 관작을 삭탈하고 문외(門外)로 출송(黜送)할 것을 간원(諫院)이 아뢰었다. 그러나 인조는 박경신이 그때에 재직(在職)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제 삼지 않았다. 1626년(인조 4)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시(詩)를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성품과 일화

박경신은 이재(吏才)에 뛰어나 제반 조치에 능숙하였으며 문명(文名)도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아들을 잃은 후에는 상심하여 술에 취하는 날이 많았다고도 전한다. 한편, 『선조실록(宣祖實錄)』선조 28년 9월 30일(신축)조 기록에는 그가 “본래 행검(行檢)이 없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동각잡기(東閣雜記)』
  • 『청선고(淸選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