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한재집(保閑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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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신숙주(申叔舟)의 시문집.

개설

『보한재집(保閑齋集)』은 조선 전기의 문신 신숙주(申叔舟)의 시문집으로 그의 아들 정(瀞)ㆍ준(浚) 등이 유고를 모아 편차한 것을 1487년(성종 18) 왕이 교서관(校書館)에 명하여, 간행한 것이 초간본인데,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 임진ㆍ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초간본이 거의 인몰되었다가, 7세손 숙(瀟)이 경상도 영천군수로 있을 때 완질을 찾아내어, 1645년(인조 23) 이식(李植)의 발문을 붙여 간행하였다. 권수에 서거정(徐居正)ㆍ홍응(洪應)ㆍ김뉴(金紐)ㆍ김종직(金宗直)ㆍ임원준(任元濬) 등 5인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신숙주의 아들 정(瀞)ㆍ준(浚) 등이 유고를 모아 편차한 것을 1487년(성종 18) 왕이 교서관(校書館)에 명하여, 간행한 것이 초간본인데,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 임진ㆍ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초간본이 거의 인몰되었다가, 7세손 숙(瀟)이 경상도 영천군수로 있을 때 완질을 찾아내어, 1645년(인조 23) 이식(李植)의 발문을 붙여 간행하였다.

서지 사항

17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7.5cm 가로19cm이며,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보한재집』은 권1에 부(賦) 6편, 권2ㆍ3에 오언소시(五言小詩) 86수, 권4∼7에 칠언소시 361수, 권8에 오언사운(五言四韻) 36수, 권9에 칠언사운 49수, 권10에 오언고시(五言古詩) 51수, 권11에 칠언고시 30수, 권12에 요해편(遼海篇) 23수, 권13에 가훈ㆍ책(策), 권14에 기, 권15에 서, 권16에 제(題)ㆍ발, 권17에 행장ㆍ신도비 등, 그리고 보유와 부록이 첨부되어 있다.

신숙주는 명문장가 또는 음운학자로, 그리고 외교가로 이름을 떨쳤는데, 이 시문집에는 그러한 면모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가훈은 변절자로 지탄을 받았던 저자로서 근신ㆍ권학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후세에 그의 시문을 많이 유실한 처지에서 이루어져서 소루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1417년 6월생으로 자는 범옹(泛翁), 호는 강희당(希賢堂)ㆍ보한재(保閑齋)이며, 경상도 고령 사람이다. 그는 경사에 두루 통달하고 시문에 능했으며, 문집으로 『보한재집(保閑齋集)』이 있다. 성운학(聲韻學)에 조예가 깊었고, 세종 때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참여하여, 한글 자모(字母)를 제정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訓釋)』, 『사성통고(四聲通考)』, 『동국정운(東國正韻)』 등을 편찬하는 데 참여하였다. 군사 문제에도 관심이 있어, 『병정(兵政)』ㆍ『병장설(兵將說)』ㆍ『북정록(北征錄)』 등을 저술하였고, 외교에도 수완이 뛰어나, 1441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정사(正使) 변료문(卞孝文), 부사(副使) 윤인보(尹仁甫)를 따라, 일본 교토(京都)에 다녀왔다.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는 일본에 대한 그의 관찰과 그 기록의 집대성이다. 이 책은 15세기 일본의 정치ㆍ사회ㆍ풍속ㆍ지리를 전면적으로 관찰하고 이를 가장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이 책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그의 대일 관찰과 조ㆍ일 양국의 외교 실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명문장가 또는 음운학자로, 그리고 외교가로 이름을 떨쳤는데, 이 시문집에는 그러한 면모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가훈은 변절자로 지탄을 받았던 저자로서 근신ㆍ권학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후세에 그의 시문을 많이 유실한 처지에서 이루어져서, 소루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는 시(詩)ㆍ요해편(遼海篇)ㆍ가훈(家訓)ㆍ책(策)ㆍ기(記)ㆍ서(序)ㆍ발(跋)ㆍ제문(祭文)ㆍ소문(疏文)ㆍ뇌(誄)ㆍ찬(贊)ㆍ설(說)ㆍ명(銘)ㆍ송(頌)ㆍ전(箋)ㆍ장(狀)ㆍ주의(奏議)ㆍ서(書)ㆍ행장(行狀)ㆍ묘지(墓誌)ㆍ표(表)ㆍ비(碑)ㆍ보유(補遺)ㆍ부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요해편에는 명(明)의 사신 예겸(倪謙)과 주고받은 시(詩)가 있다. 이들 모두는 신숙주의 동료 또는 문우, 후배의 위치에서 그를 평하고 있다.

이들이 평한 주요한 구절을 소개하면 ‘문장과 정사로 일대에 울린 사람(兼二者之能而鳴于一代者)’, ‘대현군자(大賢君子)’ ‘왕실에 공이 있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功在王室 澤被生民)’, ‘도덕을 몸에 쌓았고, 문장으로 나라에 기여한 사람(道德積于躬 文章華於國)’ 등이 보인다.

이들의 평 중엔 그의 최대 업적인 한글 창제에 대한 공은 들어 있지 않다. 한글을 폄하한 당시 사대부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한재 후손들에 인물이 난 원천(源泉)은 그가 남긴 ‘가훈(家訓)’이라는 저술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이는 자손을 생각한 사려 깊은 배려였다. 보한재집 권13에 실린 이 글 서문에서 보한재는, ‘세수문학(世守文學), 충효돈목(忠孝敦睦), 이위가법(以爲家法)’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대대로 문학을 해오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친인척과 잘 지내는 것으로 우리 가문의 법도로 삼는다.’는 내용이다.

각론으로는 조심(操心), 근신(謹身), 근학(勤學), 거가(居家), 거관(居官), 교녀(敎女) 등 6개 절목으로 나누어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집안일(居家) 절목을 보면 “사치의 폐해는 하늘의 재앙 보다 심하다.”, “집안의 법도가 궁색해짐은 아껴 쓰지 않는 때문이니, 집안 살림은 먼저 아끼고 검소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부녀 교육에 유념하라며, 세상에서 아들만 가르치고, 딸을 교육하지 않는 풍조를 준엄하게 꾸짖은 점은 특히 눈에 띈다. 시공을 초월해 오늘날에도 시사해주는 게 많다.

참고문헌

  • 국립국어원, 『신숙주의 학문과 인간』, 국립국어원, 2002.
  • 박덕규, 『신숙주 평전-사람의 길, 큰사람의 길』, 둥지, 1995.
  • 명나려, 「신숙주의 대일(對日) 관찰과 기록」, 『고전과 해석』 8집, 고전한문학연구학회, 2010.
  • 손승철, 『해동제국기의 세계』, 경인문화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