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편람(四禮便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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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ㆍ정치가 이재(李縡)가 편찬한 관혼상제 관련 종합 참고서.

개설

『사례편람(四禮便覽)』은 조선 후기의 학자ㆍ정치가 이재가 편찬한 관혼상제 관련 종합 참고서이며, 1844년(헌종 10) 이광정(李光正)이 간행하였다. 그 후 1900년(광무 4)에 황필수(黃泌秀)ㆍ지송욱(池松旭)이 증보ㆍ증간하여, 『증보사례편람(增補四禮便覽)』이라 하였다. 이재는 예학(禮學)에 관한 깊은 조예를 토대로, 주자(朱子)의 『가례(家禮)』가 지닌 허점을 보완하면서, 이를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엮었다. 따라서 이 책이 간행되어, 보급된 후 모든 예가 이 책에 따라 행해지게 되었다.

이 『사례편람』은 그의 예학에 관한 깊은 조예를 토대로 편술된 것인데, 당시 거의 맹목적으로 시행하던 주자의 『가례』의 허점을 보완하면서, 이를 현실적으로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요령이 있게 엮은 것이다. 사실 『가례』는 원칙만의 편술이기 때문에 그 행용에 있어서, 많은 함정이 있었다.

여기에서 이재는 사례 중 상례(喪禮)에서는 『상례비요(喪禮備要)』를 주로 참고하되, 현실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관행을 많이 그대로 인정해서 참작하였다. 제례(祭禮) 역시 시속(時俗)의 예제(禮制)를 도외시하지 않았지만, 관례(冠禮)와 혼례(婚禮)의 경우는 마땅한 준칙이 별로 없어서, 『가례』의 고례(古禮)와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대폭 보충하여 서로의 차이점을 찾고, 그 옳고 잘못됨을 그 나름으로 고석(考釋)하여 판별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이재(李縡)는 이이(李珥)ㆍ김장생(金長生)ㆍ송시열(宋時烈)ㆍ김창협(金昌協)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학맥을 이어오면서도, 그 나름의 학통을 수립한 대학자로서, 성리학과 예학에서 유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옥당(玉堂; 홍문관의 다른 이름)의 영수 격으로 지체 또한 높았다. 당색은 노론(老論)이었으나, 학풍에서는 당색을 넘어서기도 하였다.

『사례편람』은 이재가 죽은 뒤 그 자손들에 의해서, 다시 수정되고 정사되어, 비로소 완벽한 체제가 이루어졌지만, 간행이 용이하지 못하였다가, 이재의 증손인 광정(光正)이 수원유수(水原留守)로 있을 때인 1844년(헌종 10)에 간행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도록을 부록으로 붙이기도 하였다. 그 뒤 황필수(黃泌秀)ㆍ지송욱(池松旭) 등이 『사례편람』에 보정을 더해서, 『증보사례편람』이라 하여 1900년에 다시 간행하기도 하였다.

『증보사례편람』도 『사례편람』과 함께 기호지방은 물론 다른 지역에도 많이 보급되었다. 『사례편람』은 편술자인 이재의 명성도 있었겠지만, 이 책이 지니고 있는 특색 있는 편술방법, 그리고 요령 있게 꾸며진 여러 학자의 주장의 이동(異同)과 그 고정(考正)이 사례를 행용하는 데 있어 많은 편익을 주었다.

서지 사항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2.7cm, 가로 17.0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의 「관례(冠禮)」와 「가례(加禮)」는 남녀의 성인 의식에 대한 것으로, 남녀가 20세가 되면 길일(吉日)을 택하여, 사당(祠堂)에 고유(告由)하고 총각 차림의 두발을 끌어 올려 상투를 틀고, 빈(賓)이라는 주례역을 모시고, 이가례(二加禮)ㆍ삼가례(三加禮)를 행하여 의관을 정비하며, 축사를 받고, 초례(醮禮)와 자(字)를 명(命)하는 의식을 거쳐, 사당과 존장ㆍ친지에 견알(見謁)하는 관례ㆍ계례의 설명과 함께 각종 도식(圖式)ㆍ의제(衣制)ㆍ관제(冠制)의 그림이 첨부되어 있다.

권2의 「혼례(婚禮)」는 의혼(議昏)ㆍ납채(納采)ㆍ납폐(納幣)ㆍ친영(親迎) 등을 순서대로 서술하고, 권두에 견구고도(見舅姑圖)ㆍ염의도(拈衣圖)ㆍ대도(帶圖)ㆍ혼가설위도(婚家設位圖)ㆍ초녀도(醮女圖) 등을 첨부하였다.

권3의 「상례1(喪禮一)」에서는 절명(絶命)한 후 입관(入棺)까지의 초종(初終)ㆍ습(襲)ㆍ소렴(小斂)ㆍ대렴(大斂)의 절차와 습위치도(襲位置圖)ㆍ명정(銘旌)ㆍ영상(靈狀)ㆍ의금(衣衾)ㆍ관구(棺柩) 등에 대한 도식(圖式)이 있다.

권4의 「상례2(喪禮二)」에서는 성복(成服)ㆍ조(吊)ㆍ문상(聞喪)에 대한 서술과 오복인상조도(五服人相吊圖)ㆍ성복전조도(成服奠吊圖)ㆍ본종오복도(本宗五服圖)ㆍ삼부팔모도(三父八母圖) 및 각종 복차도(服次圖)와 상복제(喪服制)의 도식이 있다.

권5의 「상례3(喪禮三)」에서는 치장(治葬)ㆍ천구(遷柩)ㆍ발인(發引)ㆍ급묘(及墓)ㆍ반곡(反哭)에 대한 서술과 발인ㆍ영거(靈車)ㆍ방상(方相)ㆍ상여(喪轝)ㆍ장구(葬具) 등에 대한 도식이 있다.

권6의 「상례4(喪禮四)」에서는 우제(虞祭)ㆍ졸곡(卒哭)ㆍ부제(副祭)ㆍ소상(小祥)ㆍ대상(大祥)ㆍ담제(禫祭)ㆍ길제(吉祭)의 절차에 대한 서술과 우제ㆍ졸곡제의 제찬(祭饌) 진설(陳設) 도식과 부제 때 사당 배치 도식이 있다.

권7의 「상례5(喪禮五)」에서는 이장(移葬)하는 경우의 개장례(改葬禮)에 대한 의식 등이 서술되어 있다.

권8의 「제례(祭禮)」에서는 사당ㆍ시제(時制)ㆍ예제(禮祭)ㆍ기일(忌日)ㆍ묘제(墓祭) 등에 대하여 서술하고 사당도(祠堂圖)ㆍ시제도(時祭圖)ㆍ복일(卜日)ㆍ진설 등에 대한 도식을 수록하고 있다. 이재는 예전(禮典)의 정칙(正則)을 이렇게 정하였으나, 개개인의 물력(物力) 등을 고려하여 실정에 맞도록 시행 할 것을 강조하였다. 범례에서는 각권 도식 밑에 예식해설(禮式解說)과 별권(別卷)으로 편람유회(便覽類會)라는 것을 만들어 붙였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가례』의 원칙을 지키되 시속과의 묘미 있는 절충을 통하여 예의 보편성의 추구하였다. 시속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임에도 예속의 당위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이 세상에 보급된 후에 편술된 많은 사례 관련 예서들은 거의 이 책을 기준으로 편술되었으며, 사회에 통용되는 예속 역시 이에 준하여 시행되었다. 『사례편람』은 우리나라에서 간행되고 이용된 예서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 권병숙, 「이재 '사례변람'의 혼례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 문영표, 「사례편람과 거가잡복고(居家雜服攷)의 복식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 이승연, 「조선조 예학사에 있어서 『사례편람』의 위치」, 『동양예학』 제3집, 동양예학회, 1999.
  • 조희욱, 「석문의범(釋門儀範)과 사례편람(四禮便覽)의 상장의례에 관한 비교 고찰」,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 짱위자, 「도암 이재의 예학과 위인지도(爲人之道) 연구: 『사례편람』 「혼례편」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최창원, 「韓國傳統喪葬儀禮的結構與靈魂觀念之分析以《四禮便覽》爲例」, 『한중인문학연구』 제27집, 한중인문학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