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우(太宗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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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의 기일에 내리는 비

개설

조선의 제3대 왕 태종의 기일인 5월 10일에 내리는 비를 말한다. 오월십일우(五月十日雨)라 불리기도 한다. 태종의 승하 후 매년 기일이 되면 비가 온 것에서 유래하여 그러한 명칭이 붙여졌다. 태종우는 농경을 위해 물이 필요한 시기에 내리는 단비로서 조선시대에는 농경세시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매년 일정하게 내리는 태종우가 내리지 않을 때는 국가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징후로 여기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태종은 임종 직전 가뭄이 든 것을 걱정하여 옥황상제에게 빌어 비가 오게 할 것을 약속하였는데, 승하하자마자 바로 비가 내린 것을 시작으로 이후 매년 비가 내렸다고 한다. 1422년(세종 4) 태종 사후 약 170년 동안 태종우가 계속 내렸다고 전해진다.

또한 5월에 드는 비로 태조우(太祖雨)도 있었다. 이 비는 태조의 기일인 5월 24일에 내렸다고 전해진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873년(고종 10) 5월에 가뭄으로 인해 농사가 어려워지자, 건원릉의 기일을 따져 태조우를 기다렸더니 24일에 비가 내렸다고 하였다. 건원릉은 태조의 능이다.

변천

태종 사후에도 매년 규칙적으로 내렸던 태종우는 조선 중·후기가 되면 민간신앙처럼 자리 잡았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태조우와 태종우를 성조(聖祖)의 영령이 백성들을 위해 저승에서 감응하는 것이라 여겼다. 이는 일반 가정에서 죽은 조상이 자신의 후손들을 돌보아주는 조상신으로 인식된 것과 유사한 의미라 할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이 있기 전 몇 해 동안에는 태종우가 내리지 않았는데, 『기재사초(寄齋史草)』에 의하면 1591년(선조 24) 거의 200년 만에 처음으로 태종우가 내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후 몇 년간 태종우가 내리지 않았고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때부터 태종우가 내리지 않으면 나라에 큰 변란이 일어나거나 혹은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도잡지(京都雜誌)』
  • 『기재사초(寄齋史草)』
  • 『연려실리기술(燃藜室記述)』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학고집(鶴皐集)』
  • 『활재집(活齋集)』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현대신문편(1946~1970)』, 2006.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