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取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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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과거와는 별도로 특수 직임을 담당할 하급 관원을 선발하기 위하여 실시한 시험.

개설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들은 고려의 귀족적 성격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중앙집권적 양반관료체제를 이끌고 갈 모든 관원들을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여 임용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과거제도를 정비해 가는 한편, 문음의 혜택을 입은 자제들이 관직에 나갈 때에도 취재(取才)라는 시험을 통과하도록 하였다. 관직에 나아가려면 조상의 은덕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재주와 능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인 것이었다. 더구나 건국 세력들은 정국을 운영하는 핵심 관서와 관직에는 반드시 문과 출신인 문관(文官)만을 임명할 수 있도록 『경국대전』에 법제화하여 문과 출신의 문반 관원을 조선의 핵심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부각시켰다. 따라서 문음의 혜택을 받아 취재에 합격하여 문반 관원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핵심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문과에 급제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이 문음 취재를 보더라도 취재는 과거 시험과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이 구분은 취재를 특수 직임을 담당할 수 있는 적합한 하급 관원을 선발하는 시험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취재는 시험을 실시하는 주체에 따라서 이조(吏曹) 취재, 예조(禮曹) 취재, 병조 취재로 나뉘었다. 문음 취재는 20세 이상의 문음 자제를 대상으로 이조에서 주관하며 매년 정월에 사서(四書) 중 일서(一書), 오경(五經) 중 일경(一經)을 강독하도록 요구하였는데, 응시생들에게 시험 부담은 크지 않았지만, 이전 고려시대의 음서제와 비교해 본다면, 분명히 새로운 변화였다. 이조에서 실시하는 취재에는 특수한 직임에 대한 적임자를 선발하는 것도 있었다. 수령, 향교의 교수(敎授)와 훈도(訓導), 역승(驛丞)과 도승(渡丞)과 같이 지방 행정을 담당할 하급 관직, 녹사(錄事), 서리(書吏), 서제(書題)와 같은 행정 실무직, 도교(道敎)를 공부하여 소격서(昭格署)에 소속되는 도류(道流) 등이 바로 그 대상이었다. 교수와 훈도 취재는 매년 정월, 녹사 취재는 매년 정월과 7월에, 서리 취재는 3년에 1회, 그 외는 부정기적으로 시행하였다.

이조 취재 중 하나인 수령 취재에서는 사서와 일경 및 『대명률』과 『경국대전』을 강독시켰으며, 제술시험에는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치민방략(治民方略)’을 주제로 출제하였다. 교수와 훈도 취재에서는 매년(해마다) 정월에 나이가 40세 이상인 자에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강독으로 시험 보였다. 역승·도승·서제의 취재에서는 『경국대전』을 강독시키고, 왕에게 올리는 문서인 계본(啓本), 상관에서 올리는 문서인 첩정(牒呈), 같은 등급의 관서 간에 교환되던 문서인 관(關) 중에서 하나를 시험 보게 하고, 글씨체와 계산을 의미하는 서산(書算) 분야에서는 한자 정서체인 해서(楷書), 젓가락으로 숫자를 세는 행산(行算)을 각각 시험하였다. 녹사 취재에서는 강독으로 사서와 오경 중에서 각각 한 책과 『대명률』과 『경국대전』을, 제술로는 계본·첩정·관 중에서 하나를, 서산으로는 해서·언문(諺文)·행산을 시험하였으며, 서리 취재에서는 서산으로 해서와 행산만을 시험하였다. 도류 취재에서는 강독으로 사서오경 중에서 각각 한 책을 시험 보게 하였으며, 서산으로 해서를 시험하였다.

특수 직임을 담당할 적임자를 선발하는 취재는 예조에서도 실시하였는데, 그것은 주로 기술 및 예능 부문의 하급직 관원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기술 부문의 관원을 선발하는 취재는 의학(醫學)·한학(漢學)·몽학(蒙學)·왜학(倭學)·여진학(女眞學)·천문학·지리학·명과학(命課學)·율학(律學)·산학(算學) 등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예능 부문에서는 화원(畵員)·악생(樂生)·악공(樂工) 등을 선발하는 취재를 실시하였다. 이들 기술 및 예능 부분의 하급 관원들은 주로 해당 관서에서 직접 교육시켜서 선발하였기 때문에 예조에서는 1년 4계절의 첫째 달에 해당 관서의 제조(提調)와 함께 취재 시험을 보게 하였다. 예조 취재에는 각 기술과 예능 전공자인 제학생도(諸學生徒) 이외에 잡과에 합격하여 수습 관원으로 일하던 권지(權知), 전직 기술 관원 등도 응시할 수 있었다. 각 기술 및 예능 부문의 취재에서는 부문 별로 요구하는 과목과 시험 방식이 달랐지만, 성적은 모두 분수(分數)로 계산하여 1·2·3등으로 나누고 1·2등만 선발하였다. 예조 취재에서 선발된 기술관은 해당 관서의 녹관체아직(祿官遞兒職)이나 군직체아직(軍職遞兒職)을 제수받았으며, 차점자는 외직에 임명되었다.

병조(兵曹)에서도 취재를 실시하여, 실무 능력이 중요한 병조 사무의 특성상 행정 실무와 무예 능력이 탁월한 특수 군인과 일반 군졸을 선발하였다. 병조에서 실시하는 취재는 시취(試取)라고도 표현하였다. 병조 취재의 종류에는 내금위(內禁衛)·별시위(別侍衛)·친군위(親軍衛)·갑사(甲士) 취재 등 매우 다양하였다. 시험 과목은 기사(騎射)·기창(騎槍)·격구(擊毬) 등이 요구되었으며, 시험의 종류에 따라 목전(木箭)·철전(鐵箭)·편전(片箭) 등으로 구별하였으며, 사격 거리가 달랐고, 시험은 부정기적으로 실시되었다. 특수 군인이나 일반 군졸로서 병조 취재에 합격한 자는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한 뒤 하급 관원으로 서용될 자격을 얻었다[『세조실록』 원년 윤6월 23일 1번째기사].

변천

특수 직임을 담당할 적임자를 선발하는 취재는 이조·예조·병조에서 각각 실시되어 나가다가, 조선후기 『속대전』·『대전통편』을 편찬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이조 취재 중에서도 향교의 교수와 훈도를 선발하는 취재, 서리 취재, 도류 취재가 폐지되었으며, 수령 취재의 경우에는 ‘치민방략’을 주제로 하는 제술시험이 없어졌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이성무, 『한국 과거제도사』, 민음사, 1997.
  • 임용한,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혜안, 2008.
  • 차미희, 『조선시대 문과제도연구』, 국학자료원, 1999.
  • 김창현, 「조선초기의 문음제도에 관한 연구」, 『국사관논총』 56, 국사편찬위원회, 1994.
  • 박홍갑, 「조선초기 문음의 성립과정」, 『국사관논총』 39, 국사편찬위원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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