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엽경(貝葉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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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에서 다라수 잎에 문자로 기록한 최초의 불경.

개설

고대 인도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처음에 다라수(多羅樹) 잎, 즉 패엽(貝葉)에 기록하였다. 불교 최초의 경전인 패엽경(貝葉經)의 출현이다. 패엽경은 패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남방불교 지역에서 제작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신라의 자장과 진표가 패엽경을 전했다고 하며, 조선시대에 태조이성계가 창건한 흥천사에서 패엽경을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원

고대 인도에서는 종려나무과의 식물인 다라수의 잎에다 부처의 가르침을 문자로 기록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패엽경이라 한다. 최초의 불교 경전인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잎이라는 뜻의 ‘파트라(pattra)’를 음역하여 중국에서는 패다라(貝多羅)라고 하였고, 패다라엽(貝多羅葉)의 준말이 패엽(貝葉)이다. 여기서 ‘엽(葉)’은 ‘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패엽은 글자를 새겨 넣을 수 있는 다라수 잎을 가리킨다. 패엽은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등의 남부 지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잎이 두껍고 단단하여 글자를 쓰기에도 적당할 뿐 아니라 다루기도 편하기 때문에 남방불교에서는 오늘날에도 경전 사본에 패엽을 사용하고 있다.

패엽에다 부처의 말씀을 새겨 넣은 패엽경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다라수 가운데 서사용(書寫用)으로 쓰이는 것은 파루밀아와 탈리파트 두 종류라고 한다. 파루밀아는 일반적으로 편지지 같은 것으로 사용되는데 그다지 질기지 않아서 경전을 서사하는 데 적당하지 않다. 그래서 오래 보존해야 할 경전의 서사에는 튼튼한 탈리파트가 사용된다. 탈리파트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다라수에 속하며 수령은 100년이 넘는 것도 있고 높이는 25m에 달한다.

패엽경이 최초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부처가 입멸하던 기원전 544년부터였다. 부처 입멸 후 왕사성의 칠엽굴(七葉窟)에서 제자 가섭(迦葉)을 상좌로 하여 500명의 비구가 모여 경과 율 2장(藏)을 정리하여 그것을 다라수 잎에 새긴 것이 최초의 패엽경이었다.

변천

패엽경을 한국 땅에 전한 인물은 신라의 자장(慈藏)으로 알려져 있다. 자장은 당(唐)나라청량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643년(신라 선덕왕 12)에 석가모니의 사리, 치아, 가사 그리고 패엽경(貝葉經)을 가지고 귀국했다. 또 신라 통일기의 진표(眞表)는 미륵보살(彌勒菩薩)로부터 패엽경을 받았고, 이것을 염심, 심지 등에게 전했는데, 현재 대구 동화사에 보관되어 있는 패엽경이 바로 이것이라고 전한다.

조선 태조 때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원찰로 창건된 흥천사(興天寺) 석탑 안에 석가모니 사리와 함께 패엽경을 안치한 기록이 전한다. 이 패엽경은 전에 통도사(通度寺)에 있던 것을 왜구 때문에 개성의 송림사에 보관하였다가 가져온 것이었다. 흥천사 석탑에 봉안되었던 패엽경은 다시 1419년(세종 5) 석가모니의 두골사리, 가사(袈裟) 등과 함께 경복궁 내의 내불당(內佛堂)으로 옮겨졌다(『세종실록』 1년 8월 23일).

내용 및 특징

패엽은 어린나무에서 채취하는데, 나무에서 부채 모양을 한 채로 돋아난 어린잎을 그대로 잘라내어 잎을 하나씩 붙인다. 그리고 며칠 동안 음지에서 말린 다음 겹쳐서 한 달 정도 그대로 두었다가, 그 후 쌀뜨물로 쪄서 바깥에서 건조시키고 폭 6~7㎝, 길이 60~70㎝ 정도로 잘라낸다. 이후 나무판에다 고정시키고 다시 가마에 넣어 삶아내어 곰팡이가 피는 것을 방지한다. 마지막으로 고운 모래로 표면을 갈아내면 마침내 패엽경의 재료인 패다라가 완성된다. 패다라에 글자를 새길 때는 날카로운 바늘이나 송곳 따위로 긁어내는 오목새김을 하고, 여기에 숯과 코코넛 기름을 혼합하여 먹을 먹이고 헝겊으로 닦아내어 글자 부분이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마지막으로 양쪽에 구멍을 뚫어 실로 몇십장씩 꿰어 묶은 후 겉장에 나무틀을 덧대어 패엽경(貝葉經)을 완성한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패엽경은 각각 경전, 계율, 논장으로 나누어져서 3개의 광주리에 보관되었고 이러한 전통적인 사경 방식은 현재까지 스리랑카의 중요한 사찰에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 미즈노 고겐 지음, 이미령 옮김, 『경전의 성립과 전개』, 시공사, 1996.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