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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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개설

정순왕후(定順王后)송씨(宋氏)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떠나자 당시 연미정동(燕尾亭洞),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숭인동 청룡사 후원에 초가집을 짓고 비구니가 되었다. 1771년(영조 47) 영조가 정업원의 옛터에 친필로 ‘정업원구기’ 다섯 자를 쓴 비석을 내리고 누각을 세웠다.

내용 및 특징

세조 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떠나게 되자 정순왕후 송씨는 비구니가 되어 동대문 밖에 암자를 마련하였다. 송씨는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단종이 있는 영월을 바라보고 단종을 추모하며 여생을 보냈다.

송씨는 허경(虛鏡)이라는 법명을 받아 비구니로 살면서 82세까지 이곳에서 주석하였다. 또한 왕비를 따라 궁에서 나간 세 명의 궁녀 또한 희안(希安), 지심(智心), 계지(戒智)라는 법명의 비구니가 되었다. 이후 1698년(숙종 24)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위되면서 송씨 또한 정순왕후로 추숭되었다.

1771년(영조 47)에 이르러 영조는 정순왕후를 기리기 위해 송씨가 말년까지 머무른 청룡사에 ‘정업원구기’라는 비석을 세우게 한 후, 이곳을 방문하여 비각(碑閣)을 직접 살피고, 비각 앞에서 사배례(四拜禮)를 행하였다. 또 정순왕후 송씨가 매일 오르던 산봉우리에 ‘동망봉(東望峰)’ 세 글자를 써서, 청룡사와 마주하고 있는 봉우리 바위에 새기도록 하였다(『영조실록』 47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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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은 모두 영조의 친필로, 앞면에는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뒷면에는 "황조정덕 16년 신사 6월 초4일 후 251년 신묘 9월 6일에 세움. 앞뒤 모두 임금께서 친히 쓴 글씨이다[皇朝正德十六年 辛巳六月初四日後二百五十一年 辛卯九月初六日立 前後皆親書]"라고 새겨져 있다.

정순왕후가 청룡사에 머물 당시 청룡사를 정업원이라 개칭했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조가 이곳을 정업원이라 칭한 것은 ‘왕실 비빈이 출가한 사찰’이라는 의미로 정업원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대관』, 서울특별시, 1987.
  • 문명대, 『청룡사-청룡사의 역사와 문화』, 한국미술사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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