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언(眞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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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깨달음이나 서원이 담긴 비밀스런 말로, 진실되고 거짓 없는 어구.

개설

‘참된 말씀’이라는 뜻의 진언(眞言)은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대부분의 불교 경전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데 비해, 진언은 깨달음 그 자체를 언어로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그 뜻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암송하면 진리를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즉 바른 자세로 진언을 외우며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면, 나와 소리가 하나가 되어 삼매(三昧)에 들게 되고 결국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내용 및 특징

진언은 산스크리트어 ‘만트라(mantra)’를 번역한 말이다. 만트라는 찬가(讚歌)·제사(祭詞)·신주(神呪) 등을 뜻하는 말로, 불교가 발생하기 전인 인도 베다시대에는 신(神)을 찬미하는 주문(呪文)이었다. 자연의 근본적인 진동을 짧은 음절로 나타내 신과 교감한 까닭에 대부분 글귀가 짧다. 그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서, 그 신비성과 미묘한 뜻이 사라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릴 우려가 있으므로 내용을 번역하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그 뜻을 모르고 외워도 신비한 감응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만트라 즉 진언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석가모니의 깨달음이나 불보살들의 서원(誓願)을 담은 신비하고 비밀스런 어구를 뜻하게 되었다. 그런데 진언이 불교의 중요한 수행법으로 대두된 것은 인도 후기 불교의 한 교파인 밀교에서 삼밀수행(三密修行)으로 발전시켜 진언 다라니(多羅尼)로 나타나면서부터이다. 다라니는 산스크리트어 ‘다라니(dharani)’를 음역한 말로, 진언보다 긴 구절로 이루어진 주문을 의미한다. 한량없는 말을 들어도 잊지 않고 모든 장애를 벗어나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 등 많은 공덕이 있다고 하여 총지(總持)·능지(能持)·능차(能遮) 등으로 번역한다. 그리고 삼밀수행은 신밀(身密)·구밀(口密)·의밀(意密) 등을 말하는데, 부처와 중생이 하나 됨으로써 해탈에 도달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수행법이다. 이 삼밀 가운데 구밀이 바로 진언 다라니를 외우는 수행이다.

삼밀에 의한 진언의 수행 방법은 몸과 입과 마음을 동시에 작용시키는 것이다. 즉 몸으로는 바른 자세를 취하고, 입으로는 진언 다라니를 외우며, 마음으로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는다. 이때 그 소리의 파장이 몸과 마음에 퍼지면서 점점 고요해지고, 의식은 차츰 내면 깊은 곳으로 파고든다. 점점 시간이 흘러 ‘나’와 소리가 하나가 되고, 나도 사라지고 소리도 사라져 삼매(三昧)에 들게 되면 궁극의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 순간 진언의 여러 공덕이 생겨나, 세속적인 소원을 성취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또 진언 다라니를 암송하여 지혜의 세계가 열리면 들리는 모든 소리가 진리를 나타내는 소리가 되고, 내가 하는 말이 모두 부처의 진실어가 아님이 없게 된다. 이때에는 일체의 언어 행동이 완성된 자기표현이 되고, 그 표현이 나의 모범이 되어 공덕이 이 세상에 두루 미치므로 곧 부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언은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수행자의 입을 빌려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천가지 만가지 이치를 지닌 진리의 응축을 의미한다. 이 진언을 염송하는 것은 무명(無明)을 없애는 방법이 되므로, 이 몸 그대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공덕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변천

진언 다라니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신라시대 말기로 추정된다. 진언이 밀교의 수행 방법이므로, 『대일경』이나 『금강정경』 같은 밀교계 경전이 전래된 8세기 이후라고 볼 수 있다. 밀교의 수용과 더불어 보급된 진언 수행은 고려시대의 불교 의식과 소재도량[消災道場] 등에 수용되어, 밀교만의 것이 아니라 불교의 보편적인 의식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불교 종파가 통폐합됨에 따라 점차 종파 의식이 희박해지면서 여러 사상들이 혼합되어 갔고, 진언은 의식집과 재앙 소멸 등의 의미로 수용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의식집에서는 빠짐없이 진언 다라니를 외우도록 하고 있다. 『결수문(結手文)』·『지반문(志磐文)』 등 가장 많이 독송된 의식집에는 다양한 진언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조선초에는 총지종의 승려 10명이 교대로 궁궐에 들어와 삼전(三殿)에서 진언을 외는 것이 관례였으나, 태종의 명으로 폐지되었다(『태종실록』 1년 5월 26일). 이는 고려대 궁궐에서 치러지던 진언 의식이 조선초까지 그대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초기에는 왕실의 상장례 의식을 대부분 불교식으로 치렀는데, 왕이나 왕비의 각종 재가 진언법회의 형태로 개최되기도 하였다. 1408년(태종 8)에는 태조의 7재를 진언법석으로 설행하였으며(『태종실록』 8년 6월 2일), 왕실의 추천(追薦) 불사 때 『법화경』·『능엄경』·『원각경』 등을 염송하거나 열람하는 형태의 진언법석을 베풀기도 하였다. 또 천재지변의 소멸을 비는 소재법석을 진언법회 형태로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조선시대 전기 호불 성향의 왕과 왕비들은 법석에서 염송하는 경전을 불서로 간행하였는데, 인수대비의 명으로 1485년(성종 16)에 간행한 『오대진언집』이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귀정(허일범), 「한국밀교 진언수행의 역사적 변천과 현대적 활용」, 『회당학보』17, 회당학회, 2012.
  • 김무생(경정), 「진언의 성립과 한국적 유통」, 『밀교학보』7,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05.
  • 남희숙, 「조선시대 다라니·진언집의 간행과 그 역사적 의의」, 『회당학보』5, 회당학회,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