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규(朴文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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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845년(헌종 11)~1888년(고종 25) = 44세]. 조선 말기 고종 때 활동한 문신·시인. 행직(行職)은 병조 참지(參知)이다. 자는 제홍(霽鴻)이고, 호는 운소(雲巢)·천유(天游)이다. 본관은 순창(淳昌)이고, 아버지는 박유형(朴有馨)이다.

고종 시대의 활동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한 번 글을 읽으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장성한 뒤에는 채전(菜田)을 경영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는데, 큰 장대(莊臺)를 세우고 첩을 두며 친구들과 매일 술을 마시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한지 수년 만에 가산을 탕진하였다.

40세에 한시(漢詩) 공부를 시작하여 고시(古詩) 수만 편을 외웠다. 특히 근체시(近體詩)에 능하였는데, 그의 시를 청(淸)나라의 한림(翰林)동문환(董文煥)가 극찬을 하여, 그의 문명이 청나라에까지 떨치게 되었다. 43세 때인 1887년(고종 24) 개성(開城)별시(別試)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고, 특명으로 병조 참지(參知)에 등용되었다. 1888년(고종 25)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나 그 해 세상을 떠나니 향년 44세이다. 저서로는 『운소산방시초(雲巢山房詩草)』·『천유집고(天游集古)』가 있다.

성품과 후진

박문규는 남달리 총명하고 성격이 깨끗하였으며 허욕이 없었다고 한다. 후진에는 윤진우(尹鎭佑)·김재희(金載熙)·최중건(崔中建)·서창동(徐昌東)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고종)
  • 『국조방목(國朝榜目)』
  • 『고종실록(高宗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