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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4 기준 최신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당악정재(唐樂呈才)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무용수.

개설

서왕모(西王母)의 약칭으로, 기녀가 정재를 공연할 때는 선모(仙母)라고도 하였으며, 무동의 경우에는 중무(中舞)라고 불렀다. 서왕모는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녀(神女)로,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 복숭아 곧 선도(仙桃)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악정재인 헌선도(獻仙桃)는 선도를 연향의 주빈에게 바친다는 내용으로, 서왕모 신화를 바탕으로 하였다. 왕모는 그 밖의 당악정재에도 등장하는데, 중앙의 위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정재의 전반적인 내용이 담긴 치어(致語)를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왕모(王母)는 당악정재에만 등장하였다. 무대의 중앙 공간을 점유하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치어를 하였다. 예컨대 성택(聖澤) 정재의 경우, 기녀 1명이 왕모가 되어 가운데에 위치하면서 성택은 조정의 사신을 위로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치어를 말하였다(『세종실록』 10년 5월 26일). 이런 점에서 볼 때, 왕모는 주변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협무(挾舞)와 상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변천

왕모라는 용어는 고려시대의 당악정재에서도 사용되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헌선도와 오양선(五羊仙) 정재에 왕모가 출연하였다. 조선시대 전기의 기록인 『악학궤범(樂學軌範)』에서는 왕모와 선모가 혼용되었다. 고려에서 전승된 헌선도와 오양선의 경우 여전히 왕모라고 표현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새롭게 창작된 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하황은(荷皇恩)·성택 정재의 경우에는 선모라고 표기하였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왕모 대신 선모라는 용어가 주로 쓰였다. 조선시대 후기에 창작된 경풍도(慶豐圖)·만수무(萬壽舞)·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제수창(帝壽昌) 정재 등에서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선모라고 기록하였다.

무동이 외연(外宴) 정재를 공연하는 경우에는 또 다른 명칭을 사용하였다. 중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므로 주로 중무라고 불렀으나, 연향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1902년(광무 6)의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에 따르면, 헌선도와 만수무 정재에서는 봉선도반(奉仙桃盤)이라 칭하였고, 몽금척에서는 봉금척(奉金尺), 경풍도에서는 봉경풍도(奉慶豐圖)라고 불렀다. 이처럼 연향과 정재에 따라 명칭은 달랐으나, 주요 의물을 들고 중앙 공간에서 춤을 추며 치어를 하는 것은 공통적이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악학궤범(樂學軌範)』
  •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
  •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 국립국악원,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음악출판사, 1984.
  • 정재서, 『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김영사, 2010.
  • 성현 저, 렴정권 역, 『악학궤범』, 평앙국립출판사, 1956.
  • 조경아, 「조선후기 의궤를 통해 본 정재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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