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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3 기준 최신판



조선후기 등패(籐牌), 장창(長槍), 낭선(狼筅), 당파(鎲鈀) 등 근접전 병기로 근접 백병전을 수행하던 군사.

내용

임진왜란 중 원병으로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남방 출신 병사인 남병(南兵)들은 평양성 전투에서 다수의 화포를 운용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근접전 병기를 가진 병사들이 일본군을 근접전을 통해 격파하는 것이 조선에 큰 인상을 남겼다. 이들이 구사한 전술이 척계광이 개발한 이른바 절강병법(浙江兵法)이라는 것을 파악한 조선은 이 전술 체계와 군사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새로 창설한 군영인 훈련도감(訓鍊都監)을 통해 보급하였다. 훈련도감은 조총을 다루는 군사인 포수(砲手)와 함께 창검을 다루는 살수(殺手), 그리고 활을 쏘는 사수(射手), 즉 삼수병(三手兵)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러한 삼수병 체제는 지방군인 속오군(束伍軍)에도 적용되었다. 17세기 중반 이후 조선의 군사체제에서 살수와 사수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어 대부분의 군영에서 포수를 중심으로 변화하였다. 훈련도감의 경우에는 17세기 후반에는 포수가 다수인 20초(哨)를 편성하였고 사수는 없어졌다. 그리고 살수 6초가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하였다.

용례

兵曹啓曰 訓鍊都監練習之軍 鳥銃左右司各一哨 殺手左右司各二哨 以此合爲一營 設陣進退 疏其行列 迭爲出入 若使射手各一哨 居鳥銃之後 殺手之前 敵至最遠 則以鳥銃制之 次以弓矢繼之 迫近者 以長短相制 則各樣器械 無不兼具 而軍心有所恃矣 公私賤設科事 前日有傳敎 而尙未擧行 規矩磨鍊 從速試取 以入格之人 編入射手隊伍 一樣訓鍊 則勇力之人 無遺漏之患 而軍勢漸盛矣 其中才藝出群者 別爲破格收用 或禁軍除授 以爲聳動之路 未爲不可 敢此竝啓 傳曰 甚當(『선조실록』 27년 3월 25일)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 김종수, 『조선후기 중앙군제연구-훈련도감의 설립과 사회변동』, 혜안, 2003.
  • 노영구, 「임진왜란 이후 戰法의 추이와 무예서의 간행」, 『韓國文化』27, 2001.
  • 정해은, 「임진왜란기 조선이 접한 短兵器와 『武藝諸譜』의 간행」, 『군사』5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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