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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5 기준 최신판



노비 중 성별이 여성인 자.

개설

노자(奴子)와 비자(婢子)는 노비를 성별로 나누어 한 쪽만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으로 전자는 남성, 후자는 여성인 노비를 가리킨다. 고대 한국 사회부터 존재하다가 조선후기 노비제 혁파 이후 서서히 사라져 갔다. 노자와는 다른 비자만의 신역(身役)이 존재하기도 했고, 노자와 달리 비자는 비첩(婢妾)이 되어 다양한 신분층과 혼인하는 등 다양한 삶의 양상을 보인다.

내용 및 특징

비자는 공노비·사노비 구분 없이 성별이 여성인 노비를 통칭한다. 고조선부터 삼국, 고려시대까지 노비의 존재가 확인되고 이러한 노비 층이 조선 사회까지 이어져 왔다. 특히 고려시대 이후 부모 중 한 명만 천민이라도 그 자녀는 천민이 되는 일천즉천(一賤則賤)의 원리가 작동하면서 노비의 소생은 거의 대부분 노비로서의 천역(賤役)을 물려받았다.

공노비 중 비자들은 왕실 또는 각사에 소속되어 신역을 바쳤고, 비자 중에서 방자(房子)나 시녀(侍女)로 뽑히는 경우도 있었다. 사노비의 경우 노자·비자 할 것 없이 신역을 바치거나 신공(身貢)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의무를 부담하였다.

비자만이 담당하는 신역이 따로 있었다. 주인집에 상(喪)이 있으면 상주를 대신하여 울어 주던 곡비(哭婢)가 대표적으로 비자만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비자로서 유모비(乳母婢)가 되는 경우 역시 그렇다. 유모비는 양반가에 필수적인 존재로서, 상전의 아이를 맡아 기르는 비자를 말한다. 유모를 하는 동안 주인에게 좋은 음식이나 의복을 제공 받기도 하며, 자신이 기른 상전의 딸이 시집갈 때 따라가 평생을 수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밖에 간장·된장 등을 담그고 관리하며 반찬을 담당하는 장비(醬婢)나, 옷감의 바느질을 담당하는 침선비(針線婢) 역시 비자만의 고유한 신역의 하나라 하겠다.

변천

조선시대에 납공노비에게 징수하는 신공은 사내종의 경우 포 2필이고 계집종은 1필 반이었다. 이후 영조대에 와서 계집종의 신공을 포 1필로 줄였다가, 다시 완전히 없애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 후 공노비 혁파와 갑오개혁으로 인한 신분제 폐지에도 비자의 존재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1915년에 덕수궁과 창덕궁의 나인과 비자에게 위로금을 하사하고 이들을 해산했다는 기사로 보아(『순종실록부록』 8년 5월 14일), 공사(公私) 비자는 20세기 초까지 존재하다가 서서히 사라져 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김용만, 『조선시대 사노비 연구』, 집문당, 1997.
  • 전형택, 『조선 후기 노비 신분 연구』, 일조각,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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