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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6일 (수) 14:33 판



조선시대 사대부가 평상시에 쓰던 관.

내용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명사(明史)』·『대명회전(大明會典)』에는 충정관(忠靖冠)으로 표기되어 있다. 명나라 1528년(명 가정 7) 공경(公卿)과 고관(高官)이 연거복(燕居服)을 착용하도록 창안한 것으로 충정관(忠靜冠, 忠靖冠)이라고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예종 때 관례 전 세자의 두건으로 언급되었으나, 예관(禮冠)이 아니므로 사용되지 않았다.

충정관은 조선중기 이후 평상시 집안에서 쓰는 관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재료는 말총이다. 형태는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방건(方巾) 모양의 충정건(沖正巾)이나 양관(梁冠)과 비슷한 충정관(沖正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관과 비슷한 충정관의 형태는 꼭지가 비스듬하고 둥글면서 구름 모양으로 기복이 있고, 양관 체제를 모방했으면서도 사방이 둥글둥글하여 모서리가 없다. 조선중기 이후 사대부들이 관청을 출입할 때 외에는 항상 충정관을 썼다.

그러나 실제로 초상화나 기타 회화에서 충정관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1537년(중종 32)에 중국의 사신이 충정관·충정건(忠靖巾)·충정의(忠靖衣)·충정대(忠靖帶)를 가져오자 상의원(尙衣院)의 관원을 불러 본을 뜨게 한 것으로 보아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직접 제작한 사례가 없었고, 보편적으로 통용된 관모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용례

上曰 依命 天使曰 我有忠靖冠忠靖巾忠靖衣忠靖帶 殿下若欲見之 則當進之也 上曰 請欲見之 天使卽以忠靖冠忠靖巾進之曰(『중종실록』 32년 3월 16일).

참고문헌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유희경, 『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2001.
  • 繆良云, 『中國衣經』, 上海文化出版社,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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