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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정선 지방을 다스리던 관아. 조선시대 정선 지방을 다스리던 관청 및 행정기구.

개설

고려시대 삼봉현(三鳳縣)으로 명주(溟州)의 속현(屬縣)이었고, 중기에 정선현(旌善縣)으로 개칭되면서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었다. 고려말에 세 차례에 걸쳐 읍호(邑號)의 변경이 있었으나 후에 정선군으로 환원되었다. 조선시대 8도제에서 정선군으로 존속하였고, 근대사회에 지방제도 개편에서 강원도에 편제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구려에서 잉매현(仍買縣)이라 하였다. 신라에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읍호를 정선(旌善)으로 고쳐 현(縣)으로 삼고 명주(溟州)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940년(고려 태조 23)에 삼봉현으로 고쳐서 명주의 속현이 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속현에서 주현으로 승격되었고, 이어서 읍호를 고쳐 주진군(朱陳郡)이 되었다. 1291년(고려 충렬왕 17)에 도원군(桃源郡)으로 개칭되었다. 1310년(고려 충선왕 2)에 침봉군(沈鳳郡)으로 개칭되었다가 1353년(고려 공민왕 2)에 정선군으로 환원되었다.

조선 1413년(태종 13)에 8도제에서 강원도에 귀속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원주의 임내(任內)가 되었으나, 곧이어 환원되었다. 1455년(세조 1)에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원주도(原州道)를 설치하고, 원주와 횡성은 중익(中翼)으로, 정선은 좌익(左翼)으로 편제하였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세조 3)에 군익도 즉 3익(三翼) 체제를 폐지하고 거진(巨鎭)을 설치하는 진관(鎭管) 체제에서 정선군은 강릉진에 귀속되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조직 및 역할

조선초기에 군수(郡守)와 훈도(訓導) 각 1인을 배치하였다. 군수는 4품의 문음직(文蔭職)이었다. 수령의 예하에 자문기구로 향청(鄕廳)에는 좌수(座首) 1인과 별감(別監) 2인을 두었고, 6방(六房) 관속으로는 군관(軍官) 30인, 아전(衙前) 15인, 지인(知印) 12인을 두었다. 그리고 사령(使令) 14명, 관노(官奴) 14명, 관비(官婢) 15명을 두었다. 6방 관속은 객사(客舍), 아사(衙舍), 향청(鄕廳), 훈련청(訓練廳), 군기고(軍器庫) 등에 배속되었다.

변천

1895년(고종 32)에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하면서 강원도는 강릉부와 춘천부로 나뉘었고, 아울러 군현제가 폐지되고 각 고을은 군으로 단일화되었다. 이때 정선군은 충주부에 편제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23부제를 폐지하고 13도제를 시행하면서 강릉부와 춘천부를 합하여 강원도로 삼았고, 이때 정선군은 강원도로 편제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관동읍지(關東邑誌)』
  • 『관동지(關東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원도, 『강원도사』11, 강원도사 편찬위원회, 2015.
  • 강원도·정선군, 『정선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강릉대학교박물관,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