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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58 기준 최신판



현재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진보현(眞寶縣)은 삼국시대의 칠파화현(漆巴火縣)과 조람현(助攬縣)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각각 진보현과 진안현(眞安縣)이 되었다. 고려에 들어와 두 고을이 통합되어 보성부(甫城府)가 생겨났다. 고려시대에 보성부는 예주(禮州)의 속부(屬府)로 편성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4년(태조 3) 보성부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진보현으로 개명되었으며, 감무는 현감(縣監)으로 개칭되었다. 1418년(세종 즉위)에 청부현(靑鳧縣)과 통합되어 청보군(靑寶郡)이 되었으나, 1423년(세종 5)에 다시 진보현으로 분리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진보군이 되었으나, 1914년에 진보군은 폐지되고 그 영역은 청송군(靑松郡)과 영양군(英陽郡)에 나뉘어 속하였다. 조선의 진보군은 현재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지역에 그 중심지가 있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진보현은 삼국시대의 칠파화현(현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일대)과 조람현(助攬縣: 현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일대)에 기원을 둔다. 칠파화현과 조람현은 각각 신라 경덕왕 때 진보현과 진안현으로 개명하였으며, 진안현은 신라 9주(九州) 중 상주(尙州)에 속했던 문소군(聞韶郡: 현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의 영현(領縣)이었고, 진안현은 삭주(朔州)에 속했던 야성군(野城郡: 현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 일대)의 영현이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진보현과 진안현이 통합되어 보성부가 되었으며, 1018년(고려 현종 9)에 예주의 속부가 되었다. 보성부의 중심지는 옛 진안현의 중심지에 해당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말기에 왜구의 침입으로 보성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조선 건국 직후인 1394년에 보성감무를 설치하였다. 1413년에 진보현으로 개명하고 현감을 두었다. 1418년에 청부현에 합병하여 청보군으로 삼았으나(『세종실록』 즉위년 9월 25일), 1423년에 진보현을 다시 분리하였다(『세종실록』 5년 10월 27일).

조직 및 역할

신라시대에 진보현은 문소군의 영현이었고, 진안현은 야성군의 영현이었다. 두 고을에는 모두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 보성부는 예주에 속한 속부였다. 속부인 보성부에는 중앙에서 별도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으며, 예주에 파견된 지방관이 보성부를 관할하였다. 당시 보성부에는 별도로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현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보성부에는 조선 건국 직후인 1394년부터 감무가 지방관으로 파견되었으며, 1413년에 감무는 현감으로 개칭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진보현에는 종6품의 현감과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18세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진보에는 6품의 음관(蔭官)이 현감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20명, 인리(人吏) 19명, 지인(知印) 9명, 사령(使令) 7명, 관노(官奴) 26명, 관비(官婢) 28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6품의 현감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변천

1474년(성종 5)에 진보현 주민이 현감을 구타하고 모욕하자 진보현을 폐지하여 청송부에 소속시켰다가, 1478년(현종 9)에 다시 진보현을 복구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진보현의 연혁에서 변동 사항은 확인되지 않는다. 1811년(순조 11)에 진보현의 관아를 옮겼다가(『순조실록』 11년 11월 22일), 1820년(순조 20)에 다시 옛 읍치 터로 돌아왔다(『순조실록』 20년 4월 19일). 하지만 1870년(고종 7)에 읍치를 반변천 북쪽 광덕리로 옮겼다(『고종실록』 7년 12월 9일).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진보군이 되어 안동부(安東府)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진보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진보군은 폐지되어 그 영역은 청송군과 영양군으로 나뉘어 속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