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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57 기준 최신판



임진왜란 시인 1593년(선조 26) 충청·전라·경상도의 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統制使)가 있는 본진인 한산도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여서 부르는 말.

내용

통제영은 1593년 경상남도 한산도에 최초로 설립된 이후 거제도로 옮겨졌다가 1604년(선조 37) 통영으로 옮겨졌다. 통제영은 1895년(고종 32)에 폐지될 때까지 조선 수군의 최고 통치 기관으로서 존재하였다.

통제영이 설치되었던 배경은 임진왜란 시 이순신 함대의 활약 때문이었다. 이순신 함대가 남해안에서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자 선조는 그를 중심으로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을 모두 총괄하는 통제영을 설치하고자 했으며, 이순신을 초대 통제사로 임명한 것이다(『숙종실록』 14년 6월 14일). 광해군대에는 경상좌·우 수영에 통제영의 전선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광해군일기』 10년 7월 14일).

통제영은 군사적인 일 이외에도 기존의 군영에서 중앙에 공물을 제공하던 관례를 이어갔다. 매년 단옷날이면 전라도와 경상도의 감영에서 부채를 만들어 조정의 관원들에게 두루 선물하였듯이 통제영에서도 이어갔다(『정조실록』 17년 8월 29일). 또한 시대가 흐를수록 통제영의 규율이나 관리도 유명무실해졌다. 숙종대에는 전선(戰船)이 썩고 군사는 장부에만 존재하여, 봄과 가을의 정기 조련(操鍊)도 지리멸렬해지는 실정이었다(『숙종실록보궐정오』 14년 6월 14일).

고종대에 이르러 통제영은 칙령(勅令) 제139호의 삼도통제영폐지건(三道統制營廢止件)과 칙령 제140호의 각 도 병영과 수영의 폐지에 관한 건[各道兵營水營廢止件]에 따라 폐지되었다(『고종실록』 32년 7월 15일).

용례

習水戰者 壬丁之變 倭旣傾國入寇 如入無人之境 惟於海路 因李舜臣一戰 遂不敢揚帆北上 以之龍灣命令 得通於湖南 而倡義諸將 久保江都 自是爲設統制營 以領舟師(『숙종실록보궐정오』 14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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