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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춘천 지방을 다스리던 관아. 조선시대 춘천 지방을 통치하던 관청 및 행정기구.

개설

고려시대에 춘주(春州)로 명명되었으며, 삭방도(朔方道)의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에 예속되었다. 도제의 개편으로 안양도호부(安陽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하였으나 후대에 지춘주사(知春州事)로 강등되었다. 조선시대에 춘천군(春川郡)에서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세조 때 진관(鎭管) 체제에서 거진(巨鎭)으로 인근의 군현진을 관할하였으며, 근대 지방제도 개혁에서 강원도의 수부(首府) 도시가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신라 637년(신라 선덕여왕 6) 우수주(牛首州)로 삼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673년(신라 문무왕 13)에 수약주(首若州)로 고쳤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삭주(朔州)로 고쳤다가 후에 광해주(光海州)로 고쳤다.

고려 940년(고려 태조 23)에 춘주가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 10도제에서 삭방도에 편제되었고, 단련사(團練使)를 두었으며 안변도호부에 예속시켰다. 1178년(고려 명종 8)에 삭방도가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와 동주도(東州道)로 개편되면서 동주도에 편제되었다. 1203년(고려 신종 6)에 안양도호부로 승격되어 동주도의 중심 역할을 하였고, 후에 지춘주사로 강등되었다. 1263년(고려 원종 4)에 도명의 개정에 따라 교주도(交州道)로 편제되었고, 1388년(고려 우왕 14)에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에 편제되었다.

조선 1413년(태종 13)에 8도제에서 춘천군이 되었고, 1415년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455년(세조 1)에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원주도(原州道)를 설치하고, 춘천은 우익(右翼)으로 편제하였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세조 3)에 군익도 즉 3익(三翼) 체제를 폐지하고 거진을 설치하는 진관 체제에서 춘천도호부에는 거진으로 춘천진(春川鎭)이 설치되어 낭천·양구·인제·홍천을 관장하였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1637년(인조 15)에 춘천에 방어사(防禦使)와 토포사(討捕使)를 두었다(『현종실록』 14년 12월 27일). 1747년(영조 23)에 방어사를 철원부로 이관하였다. 1735년(영조 32)에 군주를 비방하는 사건으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65년(영조 41)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88년(고종 25)에 유수부(留守府)로 개편되었다가 1895년(고종 32)에 도부사(都府使)가 되었다.

조직 및 역할

부사(府使)와 교수(敎授) 각 1인을 두었으며, 부사는 문무 당상관으로 종3품의 자리였다. 부사가 영장과 토포사를 겸하였으며, 부사 예하의 자문기구인 향청(鄕廳)에는 좌수 1인과 별감 2인을 두었다. 6방(六房) 관속으로는 진영군관(鎭營軍官) 50인, 토포군관(討捕軍官) 30인, 아전(衙前) 46인, 지인(知印) 37인을 두었다. 그리고 사령(使令) 10명, 군뢰(軍牢) 10명, 관노(官奴) 13명, 관비(官婢) 13명을 두었다. 6방(六房) 관속은 객사(客舍), 아사(衙舍), 향청, 지각당(志殼堂), 연무정(鍊武亭), 훈련청(訓練廳), 장관청(將官廳), 토포청(討捕廳), 아전청(衙前廳) 등에 배속되어 제반 행정 실무를 담당하였다.

변천

1895년에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하면서 강원도는 춘천부와 강릉부로 나뉘었으며, 이때 춘천군은 춘천부의 소재 도시가 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23부제를 폐지하고 13도제를 시행하면서 다시 강원도로 환원되었으며, 춘천군은 강원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관동읍지(關東邑誌)』
  • 『관동지(關東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원도, 『강원도사』11, 강원도사 편찬위원회, 2015.
  • 강원도·춘천시,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 한림대학교박물관,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