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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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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활솔해 |
한글표제 | 활솔해 |
한자표제 | 闊率海 |
동의어 | 활란해(闊灤海), 훌룬호([呼倫湖], Külün) |
관련어 | 몽골[蒙古] 아룩타이([阿魯台], Aruγtai), 영락제(永樂帝) |
분야 | 정치/외교/외교사안 |
유형 | 집단·기구 |
집필자 | 체렝도르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활솔해(闊率海)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4년 11월 7일 |
몽골 고원 동부에 위치한 호수.
개설
활솔해(闊率海)는 내몽골의 대표 호수인 훌룬(Külün) 호를 말한다. 훌룬 호는 동부 몽골의 대표 호수인 부이르(Buyir) 호와 합쳐 훌룬부이르라고도 불리었다. 『명사(明史)』에는 활란해(闊灤海)로 표기되어 있는데, 조선에서 표기하면서 활솔해로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훌룬부이르 부근은 몽골 민족의 요람이 된 땅으로 12세기 때에는 타타르 부가 이 지역을 중심으로 유목하였다. 북원 말기에는 대칸 투구스 테무르가 이 지역을 정치 중심으로 삼아 중원 땅 회복을 시도하다가 명나라 군대에게 패배하기도 하였다.
1422년 몽골의 태사아룩타이(Aruqtai)를 치기 위하여 명나라 군대가 훌룬 호까지 진군하였지만 그가 북쪽으로 피하였기 때문에 명나라 군대는 많은 전획물만을 얻고 돌아간 일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활솔해가 한 번 등장하는데, 명 영락제가 요동 지방을 토벌하고 돌아와 관련 내용을 알린 조서를 통해서였다. 영락제는 ‘천하 군민(軍民)의 협력을 받아 몸소 육사(六師)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여, 7월 4일에 군사가 활솔해(闊率海)의 북쪽에 다다르니, 아로태가 이미 듣고 도망하였다(『세종실록』 4년 11월 7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동북아역사재단 편, 『명사 외국전 역주(明史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012.
- Монгол улсын ШУА, Монголын үндэсний нэвтэрхий толь, 2009. (몽골과학아카데미 편, 『몽골민족백과사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