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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42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평안도 대동강 하구에 설치한 수군진.

개설

노강진은 평안남도 용강군 삼화면(현 안주군 연호면 서흥리)에 설치된 수군진이다. 노강은 선사포(宣沙浦)·광량(廣梁)과 함께 삼포(三浦)라 불린다. 본래 노강진은 평안남도 안주성을 방어하는 데 주력하였고, 조선 선조 때 평안도와 함경도의 세곡을 강화도로 운송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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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경위 및 목적

노강에 수군진이 언제 설치되었는지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는다. 다만 조선 성종 때 형조에서 각 지방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을 발표하였는데, 이때 노강진에 방직산(方直山)과 안민손(安敏孫)이 배정된 것이 확인된다(『성종실록』7년 1월 21일). 이로써 보건대 노강에 수군진이 설치된 것은 1476(성종 7) 이전으로 추정된다. 삼포를 대표하여 노강에 수군진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직 및 역할

15세기 노강·선사포·광량 삼포에 주둔한 수군의 규모는 2,683명으로 확인된다(『성종실록』16년 10월 25일). 조선전기 노강진의 기능은 안주목 방비와 각종 부역이었다. 즉 1485년(성종 16)에 노강진 소속 수군 200명이 안주목에 저장된 미곡의 수량을 파악하였으며, 안주읍성 보수와 둔전(屯田)을 경작하는 데 차출되었다(『성종실록』16년 2월 5일)[『성종실록』16년 10월 24일].

16세기 말엽 임진왜란을 당하여 명에서 원정군이 조선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노강진 소속 수군들이 평안도 용강(龍岡)과 삼현(三縣) 등지의 곡식 600여 석을 모아 명나라 군사에게 지급하였다(『선조실록』 25년 7월 6일).

17세기에는 노강진 소속 수군이 바다나 큰 강에서 도적질을 하는 수적(水賊)을 방비하였다(『인조실록』5년 8월 16일).

변천

15세기에 창설된 노강진은 주로 평안남도 안주성을 방비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16세기에 노강진성이 무너지고 폐허로 변하였다(『명종실록』 9년 10월 22일). 1630년(인조 8)에 노강을 비롯한 선사포와 광량포에 거진(巨鎭)을 설치하여 바다를 방비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인조실록』 8년 8월 3일). 마침내 1635년(인조 13)에 노강진이 복원되고, 1636년에 수군첨사가 파견되었다(『인조실록』13년 9월 27일).

1872년에는 노강진에 수군첨절제사가 주둔하였으며, 방패선(防牌船)·병선(兵船)·사후선(伺候船)·급수선(汲水船) 등 총 다섯 척의 전투용 배가 배치되었다.

참고문헌

  • 「노강진지도(老江鎭地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