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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돈화문에서 종로에 이르는 지점에 놓인 다리.

개설

파자전교(把子前橋)는 왕이 창덕궁에서 나가거나 들어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다리였다. 파자는 갈대나 수수, 싸리나무 혹은 그것을 엮어서 만든 물품을 의미하는데, 이 다리 앞에 파자를 파는 가게가 있어서 파자전교라고 하였다.

명칭 유래

종로대로에서 창덕궁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있던 파자전(把子廛)의 앞에 위치해서 명명되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초기부터 왕의 행행(幸行)을 위해 세워졌다.

위치 비정

종로 대로상의 종묘 인근에 위치했다. 인근에는 파자전과 입전(笠廛) 등 종로 시전들과 순청(巡廳)이 있었다.

관련 기록

1676년(숙종 2)에 어좌(御座)를 돈화문(敦化門)에 설치하고 문과(文科) 9명, 무과(武科) 14,207명을 창방(唱榜)하였는데, 그것을 기다리던 인파가 파자전교까지 이르렀다. 창방은 이날 아침에 시작하여 점심때 끝났다(『숙종실록』 2년 3월 21일).

1736년(영조 12)에 영조가 행행하던 와중에 향실관(香室官)이 의궤(儀軌)와 채여(彩與)를 받들고 돈화문을 경유하여 나아가던 일행을 파자전교에서 마주쳤다. 영조는 연(輦)에서 내려서서 상하의 분별을 밝히는 윤이(倫彛)를 알린다는 차원에서 의궤와 채여가 먼저 출발하도록 명했다(『영조실록』 12년 4월 22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경도잡지(京都雜誌)』
  • 『여지도서(輿地圖書)』
  • 『한경지략(漢京識略)』
  • 『한양가(漢陽歌)』
  • 나각순, 『서울의 성곽』,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4.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하천』,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지명사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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