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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22 기준 최신판



사온서(司醞署) 또는 내의원(內醫院)에서 양조(釀造)한 임금의 어용주(御用酒).

개설

조선 시대에 궐내에서 필요로 하는 술을 양조하던 관서는 사온서(司醞署)인데, 온(醞)은 ‘술을 빚는다.’는 뜻이다. 나아가 온은 사온서에서 양조한 어용주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향온(香醞)은 사온서에서 양조한 향기로운 어용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 시대에 왕이 향온을 신료들에게 하사하는 것을 선온(宣醞)이라고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조선 시대의 사온서는 조선 후기에 폐지되었다. 사온서가 폐지되면서 궁중의 술은 내의원에서 담당하였다. 내의원은 일명 내국(內局)이라 불렸으므로 내의원에서 양조한 술은 내국법주(內局法酒)라고 불렸다. 사온서 또는 내의원에서 양조한 향온 또는 내국법주는 궁중 각 처소의 술 창고인 주방(酒房)에 보관되었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 주방을 관리하던 사람들은 주방내관(酒房內官)이라 불리던 환관들이었다. 주방내관은 지방의 특산주를 받아들이는 일은 물론 주방에서 술 빚는 이들도 책임졌다. 궁중의 술을 빚는 물은 대궐 안의 우물에서 길어 올렸다. 곡식은 주로 쌀을 이용하였으므로 궁중의 술은 거의 곡주였다.

조선 시대 주방에서 왕과 왕비에게 공급하는 술은 하루에 4-5병 정도였다. 왕과 왕비는 술을 반주나 약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신료들에게 선물로 하사하기도 하였다. 특히 고위관료의 회갑이나 혼인 같은 경사스런 일이 있을 경우 궁중의 향온을 하사하여 축하하곤 했다.

만드는 법

향온은 찹쌀과 멥쌀을 쪄내어 끓는 물에 넣고 그 밥이 물에 잠긴 뒤에 퍼서 식힌 뒤 녹두와 보리를 섞어서 디딘 누룩을 넣고 빚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조선 시대 술은 잔치, 혼인, 제사 등 유교의례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특히 궁중의 향온을 하사받은 양반 가문에서 이를 양조함으로써 향온은 궁중뿐 아니라 양반사회에도 널리 폈다.

참고문헌

  • 『經國大典』
  • 『攷事撮要』
  • 『要錄』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