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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05 기준 최신판



1777년 7월, 홍상범의 주도로 경희궁 존현각에 머물던 정조를 시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

개설

홍상범(洪相範) 등이 1777년(정조 1) 7월 존현각(尊賢閣)에서 독서중이던 정조를 시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한 사건이다. 홍상범의 역모는 자신의 하수인인 전흥문(田興文)이 같은 해 8월 다시 궁궐의 담을 넘다가 붙잡힘으로써 발각되었고, 관련자들의 심문 과정에서 홍상범의 어머니 효임(孝任)이 정조와 홍국영을 저주하려 한 사건, 홍상범의 친척 홍계능(洪啓能) 등이 은전군(恩全君) 이찬(李禶)을 추대하려고 한 사건들도 적발되었다. 대부분 홍계희(洪啓禧)의 후손들이었던 연루자들 다수가 처형됨으로써 정조 초반의 3대 역모 사건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

정조는 즉위 직후, 생부인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의 즉위를 방해한 홍봉한(洪鳳漢)의 동생 홍인한(洪麟漢) 및 화완옹주(和緩翁主)의 양자 정후겸(鄭厚謙) 등의 척신(戚臣) 세력을 제거하였다. 아울러 탕평윤음(蕩平綸音)을 발표하고 규장각 설립을 추진하며 왕권의 기반을 공고히 하였다. 그러나 이때 벌을 받은 죄인들의 잔여 세력은 정조의 이 같은 조치에 불만을 품고 반역을 모의하여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발단

홍상범은 아버지 홍술해(洪述海)가 황해도관찰사로 재직 중 공금을 횡령한 죄로 위리안치되자, 여기에 불만을 품고 홍인한·정후겸 등의 잔존 세력과 연합하여 정조의 시해를 도모하였다. 본관이 남양(南陽)인 홍술해는 영조대 병조 판서를 역임하며 균역법(均役法)을 추진하였으며, 나경언(羅景彦)의 고변(告變)을 사주하여 사도세자의 죽음을 촉발한 홍계희의 아들이었다. 홍상범은 우선 호위청 군관 강용휘(姜龍輝)와 원동(院洞)의 임장(任掌)인 전흥문 등을 포섭하였다. 그리고, 강용휘로 하여금 20명의 군사를 동원하도록 하였으며, 강용휘의 조카인 액례(掖隷)강계창(姜繼昌), 강용휘의 딸인 궁인(宮人) 강월혜(姜月惠)도 모의에 가담시켰다.

1777년(정조 1) 7월 28일 밤, 드디어 강계창과 강월혜의 안내를 받은 강용휘와 전흥문이 무장을 한 채 정조가 독서중이던 경희궁 존현각 지붕 위까지 잠입하였다. 이들을 사주한 홍상범은 장사(壯士) 50명과 함께 대궐 밑에 잠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용휘와 전흥문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발각되어 도주함으로써 거사는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정조실록』 1년 7월 28일).

경과

1777년(정조 1) 8월 11일, 재차 궐 침입을 시도한 전흥문이 창덕궁의 서문인 경추문(景秋門)의 담장을 넘다가 궁궐을 지키는 군사인 수포군(守鋪軍) 김춘득(金春得) 등에게 체포되었다. 전흥문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심문 과정에서 존현각 침입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된 다른 두 개의 역모 사건도 적발되었다. 하나는, 홍술해의 처 효임이 궁궐의 액속(掖屬)을 매수하여 홍술해의 사면을 도모하고, 점방(占房)이라는 무녀(巫女)를 고용하여 홍국영과 정조를 저주한 사건이었다. 다른 하나는, 홍계희의 8촌인 홍계능과 홍상범의 4촌인 홍상길(洪相吉)이 주도하여 사도세자의 혈육인 은전군 이찬을 추대하려고 하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정조실록』 1년 8월 11일). 이 세 가지 역모 사건을 묶어 정유역변(丁酉逆變)이라 한다.

홍상범, 홍술해, 홍상길, 효임, 강용휘, 전흥문 등의 관련자들은 처형당하였으며, 홍계능은 심문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홍상범의 할아버지 홍계희는 삭탈관직의 형을 받았다. 정조는 정유역변의 전말을 적은 『속명의록(續明義錄)』을 간행하여, 연루자들의 공초에서 나온 외삼촌 홍낙임(洪樂任)은 이번 역모와 관련이 전혀 없다는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리고 건양문(建陽門) 동쪽에 왕의 호위소인 숙위소(宿衛所)를 설치하고 도승지와 금위대장(禁衛大將)을 겸직하였던 홍국영을 숙위소의 대장(大將)으로 삼아 궁궐의 호위를 강화하였다.

참고문헌

  • 『속명의록(續明義錄)』
  • 고성훈, 「영조말~정조초의 정국과 삼대역모사건」, 『한국사학논총』(上), 수촌 박영석교수 화갑기념논총간행위원회, 1992.
  • 김정자, 「영조말~정조초의 정국과 정치세력의 동향-영조 46년(1770)경~정조 원년(1777)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44, 조선시대사학회, 2008.
  • 최성환, 「정조대 초반의 탕평 의리와 충역론」, 『태동고전연구』25, 태동고전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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