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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00 기준 최신판



장례 의식에서 상여를 메는 일꾼.

개설

향도는 본래 삼국 시기 불교 수용 이후 종교적 결사체로 조직되었다. 고려전기에는 불상·종·석탑·사찰을 조성하거나 법회·보시·매향 등의 행사에서 대규모 노동력과 경제력을 제공하는 등 불교 신앙 활동을 담당하는 조직이었다. 고려후기에 이르면 향촌 공동체적 기능이 강화된 조직으로 변모하였다. 재회(齋會)·매향·염불뿐 아니라 상호 부조 행위를 수행하였다.

조선시대 16세기 이후 지방 사회에 향약이 보급되자, 향도는 그 하부구조로 편입되었다. 향약 중 상사(喪事)에 관한 규정이 포함된 것은 종래 향도의 기능을 대신한 것이었다.

17세기 이후 이앙법의 보급 등 농업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향도의 조직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때부터 농업에서의 공동 노동과 관련된 향도의 기능은 상당 부분 두레로 넘어갔다. 향도는 상장(喪葬)의 일만을 수행하게 되었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상여를 메는 향도군(香徒軍), 곧 상여꾼을 내는 일이 그것이었다.

담당 직무

장례 시 상여 메는 일을 비롯한 부조의 일을 담당하였다.

변천

조선후기 도시 및 주변에서 향도군은 임노동자의 한 유형이 되었다(『영조실록』 4년 5월 9일). 이들은 장례 시 상여꾼으로 고용되었으며, 공사(公私)의 각종 역사에서 운송 노동을 담당하는 담군(擔軍)으로 고용되기도 하였다. 산릉역에서는 석재를 나르는 일에 도성 및 인근에 거주하는 향도군이 고용되었다. 이들은 도시 빈민층으로 임노동에 종사하였는데, 일정한 소속이나 작업이 없는 무뢰배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김철준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간행준비위원회 편, 『김철준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3.
  • 윤용출, 『조선후기의 요역제와 고용노동: 요역제 부역노동의 해체, 모립제 고용노동의 발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 한국사회사연구회 편, 『한국 전통사회의 구조와 변동』, 문학과 지성사, 1986.
  • 이태진, 「17·18세기 향도조직의 분화와 두레 발생」, 『진단학보』 67, 1989.
  • 채웅석, 「고려시대 향도의 사회적 성격과 변화」, 『국사관논총』 제2집,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