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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59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장원서(掌苑署) 소속의 정6품 관직.

개설

조선시대 장원서에 소속된 관직으로 1466년(세조 12) 1월에 종래의 상림원(上林園)을 장원서로 개편하면서 처음 두었다. 1506년(연산군 12) 장원서 장원이 일시적으로 혁파되기도 하였으나 곧 회복되었다. 정6품 유록관(有祿官)이었으나 조선중기 이후 종6품으로 변하였다가 폐지되었다.

담당 직무

장원은 조선시대 궁궐의 정원[園]·화초, 그리고 각 도에서 진상한 과일을 관리하는 관서인 장원서에 소속된 관직이다. 품계는 정6품이며, 정원은 1명이다. 장원은 장원서의 수석 관원으로서 궁중의 정원 관리와 과일나무·화초 등을 재배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또 각 지방에서 궁중용·제사용·손님 접대용으로 진상하는 과일을 비축·관리하는 일도 맡아보았다. 장원 아래에는 별제(別提) 2명, 봉사(奉事) 1명 및 다수의 내시별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장원서의 업무는 과원색(果園色)·노비색(奴婢色)·생과색(生果色)·건과색(乾果色)·작미색(作米色)·공방색(工房色)·장무색(掌務色)으로 되어있다. 과원색에서는 궁궐 내외 각 정원과 네 곳의 연못[蓮池]을 관리하였고, 생과색에서는 배·밤·살구·홍시·모과·석류·유자·귤을 담당하였다. 건과색에서는 곶감·호두·잣·대추·밤·개암·비자를 담당하였다.

변천

『경국대전』에는 장원이 1명으로 정6품의 유록관이었다. 1506년에 장원서 장원 등이 혁파되었다가 다시 설치되었으나, 『속대전』 단계에서 이미 혁파되었다. 그러면서 별제가 실질적인 부서의 장 역할을 하게 되면서, 『대전회통』에서 장원서는 종6품 아문으로 낮아졌다. 1882년(고종 19) 불필요한 관청을 혁파할 때 사도시(司䆃寺) 등과 함께 장원서를 혁파하였다. 이때 장원서가 맡고 있던 제향 물품의 수납은 봉상시(奉常寺)가 관장하도록 하였다. 또 제조는 감하였고 낭관들은 모두 호조에 소속시키면서 명칭은 원외랑이라고 하였다. 이후 각종 공물은 사옹원에 직접 바치게 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4: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국사편찬위원회, 1994.
  • 송수환, 『조선전기 왕실재정 연구』, 집문당, 2000.
  • 한복진, 『조선시대 궁중의 식생활 문화』,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